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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생명과학 | 제217화 돌봄노동의 가치와 저평가 본문

1. 새벽 교대
2025년 1월, 서울 노원구의 한 요양원이었습니다. 새벽 6시였습니다. 44세 요양보호사 임순희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있었습니다. 12시간이었습니다. 담당 노인이 8명이었습니다. 밤새 두 번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한 번 낙상 위험이 있어 붙잡았습니다. 새벽 4시에 잠들지 못하는 어르신과 한 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교대 근무자가 왔습니다. 인수인계를 마쳤습니다. 임순희는 버스를 탔습니다. 월급은 230만 원이었습니다. 야간 수당이 포함된 금액이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12시간의 무게가 어깨에 남아 있었습니다.
2. 돌봄노동의 정의
돌봄노동은 타인의 신체적·정서적 필요를 직접 채우는 노동입니다.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보육교사, 가정도우미, 장애인 활동지원사. 이 노동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직접 돌본다는 것입니다. 청소, 요리, 목욕 보조, 투약 관리, 정서적 지지. 육체적으로 힘들고 감정적으로 소모됩니다. 실수가 사람의 안전에 직결됩니다. 그러나 임금은 낮습니다. 사회적 인정도 낮습니다. 돌봄노동이 없으면 사회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이 노동을 저평가합니다.
3. 돌봄 인력의 현황
초고령 사회 진입으로 돌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노인은 약 110만 명입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보유자는 200만 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실제 종사자는 절반 이하입니다. 자격증은 있지만 현장을 떠난 사람이 많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임금이 낮고 노동 강도가 높고 사회적 인정이 없습니다. 2024년 요양보호사 평균 월급은 약 220만 원이었습니다.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10년 경력이 있어도 크게 오르지 않습니다. 숙련이 임금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돌봄을 받는 사람의 존엄은 돌봄을 주는 사람의 처우에 달려 있다
4. 왜 저평가되는가
돌봄노동이 저평가되는 이유는 구조적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무급 노동으로 수행됐습니다. 가정 안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시장화됐을 때도 이 저평가가 유지됐습니다. 여성이 집에서 공짜로 하던 일이 시장에서도 저렴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2024년 기준 돌봄 관련 직종의 여성 비율은 85%를 넘습니다. 성별 분리가 임금 저평가와 겹칩니다. 또한 돌봄노동은 결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공장 노동자는 생산량이 수치로 나옵니다. 요양보호사가 노인의 존엄을 지킨 것은 수치로 보이지 않습니다. 측정되지 않는 가치는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5. 감정노동의 무게
돌봄노동은 육체노동이면서 동시에 감정노동입니다. 치매 노인이 욕을 합니다. 가족이 불만을 표출합니다. 임종을 지켜봅니다. 이 모든 감정적 부담을 흡수하면서 전문적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2023년 요양보호사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힘든 요소 1위는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감정 소진이었습니다. 2위가 육체적 피로, 3위가 낮은 사회적 인식이었습니다. 임금 문제보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감각이 더 소진을 만들었습니다. 돌봄노동자의 번아웃은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구조의 실패입니다.
6. 돌봄의 공백이 만드는 결과
돌봄 인력이 부족하면 누가 그 빈자리를 채웁니까. 가족입니다. 대부분 여성 가족 구성원입니다. 며느리, 딸, 어머니. 직장을 그만두거나 줄입니다. 경력이 단절됩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해집니다. 노후 준비가 어려워집니다. 돌봄의 공백이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의 삶을 무너뜨립니다. 2024년 국내 조사에서 가족 돌봄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사람의 80%가 여성이었습니다. 돌봄 문제는 개별 가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별 불평등과 노동시장 불평등이 교차하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
7. 해외 돌봄 인력의 유입
돌봄 인력 부족을 외국인 노동자로 채우려는 논의가 있습니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은 이미 외국인 가사·돌봄 노동자를 대규모로 활용합니다. 한국도 2024년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듭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더 낮은 임금을 적용하면 돌봄노동의 저평가가 심화됩니다. 내국인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 압력이 줄어듭니다. 근본 해결이 아니라 저임금 구조를 이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8. 돌봄 수가의 문제
요양보호사의 임금이 낮은 것은 장기요양 수가 구조와 연결됩니다. 정부가 정한 수가 안에서 기관이 인건비를 지급합니다. 수가가 낮으면 인건비가 낮아집니다. 수가를 올리면 장기요양보험 지출이 늘어납니다. 건강보험 재정과 연결됩니다.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단순히 임금 문제가 아니라 사회보험 재정 문제와 얽혀 있습니다. 복잡한 구조이지만 해결하지 않으면 돌봄 공백이 심화됩니다. 돌봄 공백은 고령 사회에서 사회 전체의 위기입니다.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고령 사회의 조건이다
9. 개인이 할 수 있는 것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보육교사를 단순 보조 인력이 아닌 전문직으로 인식하는 것이 처우 개선의 시작입니다. 가족 중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생겼을 때 지역 내 장기요양기관 정보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인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족 돌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지역 치매안심센터와 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상담과 연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돌봄 부담을 혼자 감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10. 새벽의 무게
임순희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7시였습니다. 남편은 출근 준비 중이었습니다. 아이는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임순희는 밥을 차렸습니다. 가족의 아침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후 3시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저녁 근무가 있었습니다. 임순희가 밤새 돌본 어르신들은 오늘도 깨끗하게 씻겨지고 제때 약을 먹고 안전하게 하루를 보낼 것입니다. 그 하루가 가능한 것은 임순희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230만 원짜리 월급에 담겨 있습니다. 담기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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