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반응형
«   2026/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raonsoul's blog

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63화 세월호 구조 실패와 책임 본문

역사 & 현대 사회/대한민국 근현대사

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63화 세월호 구조 실패와 책임

raonsoul
반응형

세월호 침몰 구조 활동

2014년 4월 16일 오전 진도 앞바다에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해상. 세월호가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었습니다. 승객 4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이 수학여행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배가 기울자 선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십시오." 학생들은 말을 들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구조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오전 9시 30분. 배가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10시 17분.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구조대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배는 왜 침몰했습니까

세월호는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된 배였습니다. 2012년 청해진해운이 사들였습니다. 선체를 증축했습니다. 객실을 늘렸습니다. 화물 적재량을 늘렸습니다.

출항 당일 화물이 과적됐습니다. 허용 화물량은 987톤이었습니다. 실제 적재량은 2,142톤이었습니다. 두 배가 넘었습니다.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습니다.

맹골수도는 물살이 빠른 해역이었습니다. 급격한 변침이 있었습니다. 고정되지 않은 화물이 한쪽으로 쏠렸습니다. 배가 기울었습니다. 복원력을 잃었습니다. 균형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조타실에서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선장 이준석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대기하라"는 방송만 반복됐습니다. 퇴선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오전 9시 46분. 선장과 선원 15명이 탈출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움직이지 마라"고 방송한 뒤였습니다. 구명정을 타고 바다로 나왔습니다. 먼저 구조됐습니다.

해경 헬기가 도착했습니다. 선원들이 구조됐습니다. 학생들은 선실 안에 있었습니다. 갇혀 있었습니다.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는 계속 가라앉았습니다.


해경은 왜 구조하지 못했습니까

오전 8시 52분. 세월호에서 첫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해경 123정이 출동했습니다. 9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크게 기울어 있었습니다.

해경은 배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선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에게 탈출하라고 방송했습니다. 확성기로 외쳤습니다. 하지만 배 안은 이미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잠수사들이 뒤늦게 도착했습니다.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조류가 빠르다는 이유였습니다. 민간 잠수사들이 자원했습니다. 해경이 막았습니다. "우리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세월호 침몰 중. 승객 전원 구조."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오보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묘연했습니다. 오후까지 공식 일정이 없었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됐지만 컨트롤타워가 없었습니다. 해경, 해수부, 안전행정부가 따로 움직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중앙재난대책본부를 방문한 것은 오후 5시였습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은 뒤였습니다.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기념관 앞에서 묵념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세월호 침몰로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습니다. 단원고 학생 250명이 포함됐습니다. 교사 11명도 희생됐습니다. 일반 승객과 승무원도 있었습니다.

172명이 구조됐습니다. 대부분 스스로 탈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실 안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나오지 못했습니다.

"기다리면 구조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말을 들었습니다.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것이 죽음이 됐습니다. 말을 어기고 갑판으로 나온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수사와 재판은 어떻게 됐습니까

선장 이준석이 구속됐습니다. 살인죄로 기소됐습니다. 2014년 11월 1심에서 징역 36년이 선고됐습니다.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늘었습니다. 대법원이 확정했습니다.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이 수배됐습니다. 도주했습니다.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습니다. 2014년 7월 전남 순천 매실밭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도주 중 사망했습니다.

해경 지휘관들이 기소됐습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였습니다. 대부분 무죄를 받았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유족들이 법정에서 울었습니다.


진상규명은 어떻게 됐습니까

2015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진상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활동이 제한됐습니다. 정부가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자료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새로 출범했습니다. 2기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2022년 최종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구조 실패는 인재였다."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7시간 동안 대통령의 위기 대응이 부재했다." 하지만 형사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세월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2017년 3월. 세월호가 인양됐습니다. 침몰 1,073일 만이었습니다. 전남 목포신항으로 옮겨졌습니다. 선체 수색이 시작됐습니다. 미수습자 5명 중 4명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2019년 세월호 선체가 목포에 보존됐습니다. 기억관이 만들어졌습니다. 시민들이 찾아옵니다. 녹슨 선체를 봅니다. 아이들의 물건이 전시됩니다. 교복과 운동화가 있습니다.

2024년. 단원고 학생들이 살았다면 서른 살이 됐을 것입니다. 유족들은 여전히 진상규명을 요구합니다. 책임자 처벌을 원합니다. 매년 4월 16일이 되면 진도 앞바다로 갑니다.


질문은 남는다

왜 "대기하라"는 방송이 나왔습니까. 선장과 선원들은 왜 먼저 탈출했습니까. 해경은 왜 선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민간 잠수사를 왜 막았습니까.

7시간 동안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컨트롤타워는 왜 작동하지 않았습니까. 오보가 왜 청와대에 보고됐습니까. 진실을 숨긴 사람은 누구입니까.

304명이 죽었는데 왜 실형 받은 사람이 선장뿐입니까. 국가의 구조 실패는 왜 처벌받지 않습니까. 세월호는 무엇을 남겼습니까. 다음 참사를 막을 수 있습니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