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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61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본문

역사 & 현대 사회/대한민국 근현대사

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61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raon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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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맑고 푸른 바다와 자연 산호가 어우러진 해안 풍경

2007년 5월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2007년 5월 14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총회가 열렸습니다. 안건은 하나였습니다. 해군기지 유치 찬반 투표였습니다.

주민 87명이 참석했습니다. 마을 전체 주민은 1,900명이었습니다. 찬성 87표가 나왔습니다. 만장일치였습니다. 반대표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반대파 주민들이 항의했습니다. "우리는 투표도 못 했다."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불법 총회"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을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강정마을의 긴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해군기지는 왜 강정마을이었습니까

해군은 2002년부터 제주에 기지를 추진했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 해상 통로를 관리해야 했습니다. 이지스함과 잠수함이 들어갈 수 있는 심해항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화순항이 후보지였습니다. 주민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위미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정마을이 최종 선택됐습니다. 해안선이 깊었습니다. 부지가 확보 가능했습니다.

강정마을 앞바다는 천연기념물 지역이었습니다. 연산호 군락이 있었습니다. 붉은발말똥게 서식지였습니다.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중 하나였습니다. 구럼비 바위가 1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왜 반대했습니까

반대파 주민들은 환경 파괴를 우려했습니다. 구럼비 바위가 폭파됩니다. 연산호가 사라집니다. 맑은 바다가 오염됩니다. 관광 자원이 망가집니다.

평화의 섬 제주에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제주도는 2005년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됐습니다. 해군기지는 그 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군 핵항공모함이 기항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한미동맹 강화로 제주가 군사 요충지가 된다는 걱정이었습니다. 분쟁 시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새벽의 건설 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평화로운 저항의 의미로 기도 모임을 갖고 있는 장면

공사는 어떻게 강행됐습니까

2011년 3월. 해군이 구럼비 바위 발파를 시작했습니다. 주민과 활동가들이 막아섰습니다. 공사 장비 앞에 앉았습니다. 경찰이 끌어냈습니다.

매일 아침 미사가 열렸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공사 현장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문정현 신부가 이끌었습니다. "이 땅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전국에서 활동가들이 모였습니다. 예술가들이 왔습니다. 외국인들도 왔습니다. 1,000일이 넘도록 매일 평화 행진이 이어졌습니다. 경찰은 매일 연행했습니다. 벌금 고지서가 쌓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행됐습니까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연행된 사람은 700명이 넘었습니다. 벌금 총액은 수억 원에 달했습니다. 구속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강동균 전 강정마을 이장이 구속됐습니다. 공사 방해 혐의였습니다. 60대 노인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단식했습니다.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수십 차례 연행됐습니다. 벌금만 수천만 원이었습니다. "벌금 낼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신자들이 모금했습니다. 다음 날 또 공사 현장 앞에 섰습니다.


구럼비 바위는 어떻게 됐습니까

2012년 3월 7일. 해군이 구럼비 바위 발파를 강행했습니다. 새벽 4시였습니다. 주민들이 모이기 전이었습니다. 폭약이 터졌습니다. 1킬로미터 바위가 산산조각 났습니다.

주민들이 달려왔습니다. 울었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 바위가 없어졌다." 평생 그 바위 위에서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곳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낚시하던 곳이었습니다.

연산호도 사라졌습니다. 붉은발말똥게 서식지가 파괴됐습니다. 투명했던 바닷물이 흙탕물이 됐습니다. 공사가 이어지는 동안 물고기들이 떠났습니다.


해군기지는 완공됐습니까

2016년 2월. 제주해군기지가 준공됐습니다. 이지스함 2척이 입항했습니다. 해군 함정 20여 척이 배치됐습니다.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민군 복합항이었습니다.

국방부는 "제주도 방어에 필수"라고 밝혔습니다. "크루즈 관광으로 지역 경제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마을 발전기금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반대파 주민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빼앗긴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구럼비 바위는 사라졌습니다. 연산호는 파괴됐습니다. 돈으로 되살 수 없었습니다.


마을은 어떻게 됐습니까

강정마을은 둘로 갈라졌습니다. 찬성파와 반대파가 대립했습니다. 이웃 사이에 말이 없어졌습니다. 형제가 등을 돌렸습니다. 오랜 친구가 원수가 됐습니다.

해군기지 반대 활동가 일부는 마을에 정착했습니다. 카페를 열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마을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2024년. 강정마을 앞 바다에는 해군 함정이 있습니다. 크루즈선도 가끔 들어옵니다. 구럼비 바위는 없습니다. 평화 활동가들은 여전히 기지 앞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질문은 남는다

불법 주민총회로 결정된 것이 정당했습니까. 87명의 찬성이 1,900명 전체 의사를 대표할 수 있었습니까. 환경영향평가는 제대로 이뤄졌습니까. 구럼비 바위 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까.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이 모순 아닙니까. 국가 안보와 지역 주민 권리는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합니까. 700명을 연행하면서 공사를 강행한 것이 민주적 절차였습니까.

구럼비 바위를 되살릴 방법은 있습니까. 갈라진 마을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강정마을의 희생은 누가 기억합니까. 제주의 평화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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