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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59화 경찰의 집회 과잉 진압 본문

2015년 11월 14일 광화문 거리에서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렸습니다. 노동자, 농민, 빈민 단체 6만여 명이 모였습니다. 노동개악 반대를 외쳤습니다. 백남기(69세) 농민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오후 5시경. 경찰이 차벽을 쳤습니다. 청와대 방향 진입을 막았습니다. 시위대와 대치했습니다. 밀고 밀렸습니다. 경찰이 물대포를 쐈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습니다.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았습니다. 머리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의식을 잃었습니다. 구급차가 왔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물대포는 어떻게 쏘아졌습니까
경찰은 20대의 물대포차를 배치했습니다. 살수차라고 불렸습니다. 1분에 3,000리터를 뿜어냈습니다. 수압은 평방센티미터당 7킬로그램이었습니다. 10미터 거리에서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로부터 4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경찰은 직사로 쐈습니다. 머리를 정조준했습니다. 물줄기가 얼굴을 강타했습니다. 두개골이 골절됐습니다.
경찰 매뉴얼은 있었습니다. "30미터 이상 거리 유지", "사람의 얼굴이나 상반신 직사 금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규정을 어겼습니다.
백남기 농민은 누구였습니까
백남기 농민은 경남 의령에서 논농사를 지었습니다. 3,000평 논을 일궜습니다. 쌀값 하락으로 빚을 졌습니다. 농민운동에 참여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나갔습니다. 2014년 쌀값 폭락 대책 촉구 집회에도 있었습니다. 트랙터를 몰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평화로운 시위를 했습니다.
2015년 11월 14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농민 생존권을 지키러 왔습니다.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317일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2016년 9월 25일 숨을 거뒀습니다.
경찰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직후. 경찰청장이 입장을 냈습니다. "불법 폭력 시위에 대응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 "물대포와 부상 사이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서울경찰청장 구은수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버스를 부쉈다. 화염병을 던졌다"고 밝혔습니다. 물대포 사용은 정당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의식불명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병원에 경비를 세웠습니다. 면회를 제한했습니다. 가족들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지자들의 방문을 막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2016년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습니다. 서울대병원이 사망진단서를 작성했습니다. 사인은 "외인사"였습니다. 물대포에 의한 외상성 뇌손상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경찰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사인을 "병사"로 바꾸라고 요구했습니다. 물대포가 아니라 지병 때문에 죽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병원 측은 거부했습니다.
경찰이 행정명령을 발동했습니다.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유족이 반대했습니다. "아버지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병원 영안실을 점거했습니다. 시신을 지켰습니다.
장례는 어떻게 치러졌습니까
영안실 점거가 이어졌습니다. 경찰이 병원을 포위했습니다. 유족과 지지자 200여 명이 농성했습니다. 밖에서는 추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69일이 지났습니다.
2016년 12월 2일. 경찰이 강제 부검 명령을 철회했습니다. 유족이 조건부 부검에 동의했습니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조건이었습니다. 12월 12일 부검이 시행됐습니다.
부검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인은 "물대포에 의한 외상성 뇌손상"이었습니다.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 아니었습니다. 경찰의 주장이 거짓이었습니다. 2017년 1월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재판은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2016년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현장 지휘관과 물대포 운용 경찰관을 조사했습니다. 2018년 5월 기소했습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였습니다.
서울경찰청장 구은수도 기소됐습니다.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였습니다. 병원에 사망진단서 정정을 압박한 혐의였습니다. 강제 부검을 시도한 혐의였습니다.
2020년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물대포 운용 경찰관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현장 지휘관은 무죄를 받았습니다. 구은수 전 청장도 무죄였습니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유족이 항소했습니다. 검찰도 항소했습니다.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였습니다. 2021년 항소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물대포 운용 경찰관의 형량이 그대로였습니다.
구은수 전 청장은 2심에서도 무죄를 받았습니다. "사망진단서 정정 압박이 직권남용이 아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검찰이 상고했습니다.
2023년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물대포 운용 경찰관의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집행유예였습니다.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구은수 전 청장의 무죄도 확정됐습니다. 아무도 실형을 받지 않았습니다.
물대포는 지금도 쓰입니까
2015년 이후에도 물대포는 계속 사용됐습니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 동원됐습니다. 2020년 신천지 집회 해산에도 쓰였습니다. 2022년 화물연대 파업 진압에도 등장했습니다.
2021년 경찰청이 물대포 사용 지침을 개정했습니다. "직사 금지", "30미터 이상 거리 유지"를 명문화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이 물대포 폐기를 요구했습니다. "살인 무기"라고 규정했습니다. 경찰은 "합법적 진압 장비"라고 맞섰습니다. 물대포차는 여전히 경찰 차고에 있습니다. 언제든 거리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질문은 남는다
왜 69세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했습니까. 경찰 매뉴얼은 왜 지켜지지 않았습니까. 현장 지휘관은 왜 무죄를 받았습니까. 구은수 전 청장은 왜 처벌받지 않았습니까.
사망진단서를 바꾸라고 압박한 것이 직권남용이 아닌가. 강제 부검을 시도한 것은 정당한가. 집행유예가 적정한 처벌인가.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는 것이 정의인가.
물대포는 왜 계속 쓰입니까. 개정된 지침은 지켜지고 있나. 다음 희생자는 누가 될 것인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무엇을 바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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