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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58화 옥시 제품 피해 본문

역사 & 현대 사회/대한민국 근현대사

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58화 옥시 제품 피해

raon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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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로비의 밤 풍경

2016년 5월 옥시 본사 앞에서

2016년 5월 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 피해자 가족 100여 명이 모였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왔습니다. 사진을 들었습니다. 죽은 아이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살인기업 옥시를 처벌하라." 구호가 울려 퍼졌습니다. 엄마들이 울었습니다. 아빠들이 주먹을 쥐었습니다. 본사 로비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경비가 막았습니다.

기자회견이 시작됐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이 증언했습니다. "옥시가 우리 아이를 죽였습니다." "사과하라." "책임지라." 본사 건물은 조용했습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옥시는 어떤 회사였습니까

옥시레킷벤키저는 영국계 다국적 기업이었습니다. 1991년 한국에 진출했습니다. 생활용품을 팔았습니다. 세제, 방향제, 살균제를 만들었습니다.

대표 제품은 '옥시 싹싹'이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옥시 쎄퍼'도 있었습니다. TV 광고를 했습니다. "우리 아이를 지켜주는 옥시." 엄마들이 믿었습니다. 안전한 제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까지 시장 점유율 1위였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량의 70%를 차지했습니다. 연간 매출 수백억 원을 올렸습니다. 한국은 옥시의 핵심 시장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터졌습니다. 정부가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옥시 제품이 가장 많은 피해자를 냈습니다. 사망자의 70%가 옥시 쎄퍼를 사용했습니다.

옥시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5개월이 지난 뒤 사과문을 냈습니다. "유감을 표합니다." 하지만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승인을 받은 제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12년 내부 문서가 공개됐습니다. 옥시는 2003년부터 위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체 실험에서 독성이 확인됐습니다. 보고서를 숨겼습니다. 제품은 계속 팔렸습니다.


옥시는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2016년 4월. 검찰이 옥시 임원들을 기소했습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였습니다. 증거 인멸 혐의도 있었습니다. 내부 문서를 삭제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옥시 본사는 한국 법인과 선을 그었습니다. "한국 법인이 독자적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본사는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한국 직원들만 재판에 넘겼습니다.

옥시 한국 대표 신현우가 법정에 섰습니다. "몰랐다"고 했습니다. "제조사가 안전하다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이 법정에서 소리쳤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재판이 중단됐습니다.


슬픔 속에서 진실을 요구하다

본사 CEO는 왜 한국에 오지 않았습니까

2016년 5월. 국회가 옥시 본사 CEO 라케시 카푸어를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출석 요구서를 보냈습니다. 카푸어는 오지 않았습니다. "건강상 이유"라고 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항의했습니다. "도망가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이 영국 본사 앞에서 시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외교적 요청을 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강제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카푸어는 한국에 오지 않았습니다. 화상으로 국회 청문회에 참석했습니다. 통역을 통해 답변했습니다.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하지만 법적 책임은 한국 법인에 있습니다." 청문회장이 술렁였습니다.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2017년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옥시 전 대표 신현우에게 징역 7년이 선고됐습니다. 품질관리 담당 임원은 징역 5년을 받았습니다. "기업의 조직적 범죄"라는 판단이었습니다.

2018년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었습니다. 신현우는 징역 6년으로 감형됐습니다. 다른 임원들도 형이 줄었습니다. 일부는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대법원이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본사 임원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실제 의사결정권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한국 직원들만 감옥에 갔습니다.


보상은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2016년 옥시가 피해구제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1,0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습니다. "피해자 전원을 보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심사 기준이 까다로웠습니다. 옥시 제품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영수증이나 제품 사진을 제출해야 했습니다. 많은 피해자가 탈락했습니다.

보상액도 문제였습니다. 사망자 유족에게 최대 1억 원을 지급했습니다. 피해자들은 턱없이 적다고 했습니다.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개별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옥시는 그 후 어떻게 됐습니까

2016년 옥시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옥시 싹싹, 옥시 크린이 매장에서 사라졌습니다. 매출이 급감했습니다. 전년 대비 90% 이상 떨어졌습니다.

2017년 옥시레킷벤키저코리아가 사명을 바꿨습니다. 'RB코리아'가 됐습니다. 옥시 브랜드를 버렸습니다. 새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2021년 영국 본사가 한국 법인을 매각했습니다. 투자회사에 넘겼습니다. 손을 뗐습니다. 책임에서 벗어났습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삽니까

2023년까지 옥시 제품 피해 신고자는 5,600명이었습니다. 이 중 1,400명이 사망했습니다. 대부분 임산부와 영유아였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평생 병원을 다녀야 했습니다.

폐 섬유화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랐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친구를 사귀지 못했습니다.

엄마들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가습기 살균제를 넣었다." "내가 아이를 죽였다."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질문은 남는다

옥시는 2003년부터 위험을 알았습니다. 왜 제품을 계속 팔았습니까. 본사 CEO는 왜 한국에 오지 않았습니까. 영국 본사 임원은 왜 처벌받지 않았습니까.

다국적 기업의 범죄는 왜 처벌하기 어려운가. 한국 법으로 영국 본사를 처벌할 수 없는가. 사명을 바꾸고 매각하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1,400명이 죽었는데 왜 보상액이 1억 원인가. 생명의 가치는 그 정도인가. 피해자들은 언제까지 싸워야 하나. 옥시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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