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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53화 강기훈 억울한 옥살이 (1994-2008) 본문

1994년 10월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에서는
1994년 10월 21일 오후 5시 30분경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건물 지하 1층. 비디오방과 게임장이 있었다. 갑자기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실내 장식재가 가연성이었다. 유독 가스가 퍼졌다.
손님들이 출구로 몰렸다. 계단이 하나뿐이었다. 비상구가 없었다. 연기에 질식했다. 쓰러졌다. 6명이 숨졌다.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방화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다. 목격자가 수상한 사람을 봤다고 진술했다. CCTV는 없었다. 물적 증거도 없었다. 경찰은 용의자를 찾아야 했다.
강기훈은 어떻게 용의자가 됐나
강기훈은 당시 23세였다. 지적장애 3급이었다. IQ 69였다. 서울 종로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구걸로 생활했다. 범죄 경력이 없었다.
화재 발생 5일 뒤 경찰이 강기훈을 연행했다. 불을 질렀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조사가 계속됐다. 며칠 밤낮 조사를 받았다. 피곤했다. 밥을 주지 않았다.
형사가 말했다. 네가 했다고 하면 밥을 주겠다고. 집에 보내주겠다고. 강기훈은 시키는 대로 했다. 자백 조서에 지장을 찍었다. 글을 읽지 못했다.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
재판은 어떻게 진행됐나
1995년 3월 서울지방법원. 강기훈 방화 치사 사건 1심 재판이 시작됐다. 검사는 자백을 증거로 제시했다. 국선 변호인이 선임됐다. 강기훈은 법정에서 말했다.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경찰이 시켜서 자백했다고.
재판부는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목격자 진술도 있었다.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진술이었다. 강기훈과 일치하는지 불분명했다. 하지만 증거로 채택됐다.
1995년 6월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항소했다. 1996년 항소심도 무기징역. 대법원에 상고했다. 1997년 상고 기각.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교도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강기훈은 대전교도소에 수감됐다. 무기수가 됐다.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불을 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도관들은 듣지 않았다.
10년이 지났다. 2004년이 됐다. 언론이 강기훈 사건을 다뤘다. 의혹이 제기됐다. 자백 외에 증거가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지적장애인에게 자백을 강요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민단체가 나섰다. 진실을 찾기 위한 모임이 만들어졌다. 변호사들이 무료 변론에 나섰다. 재심을 청구했다. 2005년 재심이 개시됐다.
재심에서 무엇이 밝혀졌나
2005년부터 재심 재판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화재 감식 전문가가 증언했다. 방화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전기 합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지적장애 전문가도 증언했다. 강기훈의 지적 능력으로는 정교한 방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자백도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유도 신문에 쉽게 영향받는다고 설명했다.
목격자 진술도 재검증됐다. 목격자가 본 사람과 강기훈이 일치하는지 불분명했다. 시간대도 맞지 않았다. 검찰은 자백만으로는 유죄를 입증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2008년 1월 법정에서는
2008년 1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강기훈이 법정에 섰다. 34세가 됐다. 14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었다. 피고인 무죄. 방화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 자백은 강요됐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증거가 없다.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
강기훈은 이해하지 못했다. 변호인이 설명했다. 이제 나갈 수 있다고. 무죄라고. 강기훈이 웃었다. 눈물을 흘렸다.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출소 후 강기훈은 어떻게 살았나
2008년 2월 강기훈이 교도소 문을 나섰다. 지원 단체가 맞았다. 갈 곳이 없었다. 가족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복지시설로 갔다.
국가 배상을 청구했다. 14년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배상이었다. 재판이 진행됐다. 2010년 배상 판결이 났다. 4억 원이었다. 14년 인생에 대한 대가였다.
돈을 받았지만 삶은 어려웠다. 사회 적응이 힘들었다. 14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20대를 잃었다. 30대 중반이 됐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복지 지원을 받으며 살았다.
경찰과 검찰은 무엇을 잘못했나
경찰은 물적 증거 없이 자백만 받았다. 지적장애인에게 강압 수사를 했다. 법적 대리인 없이 조사했다. 변호인 조력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검찰은 부실한 증거로 기소했다. 자백의 신빙성을 검증하지 않았다. 지적장애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재심에서 무죄 의견을 내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았다.
법원도 책임이 있었다. 1심부터 상고심까지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물적 증거 부족을 간과했다. 지적장애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14년 뒤 무죄를 선고했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도는 무엇이 바뀌었나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됐다. 지적장애인 피의자 조사 시 법적 대리인이나 신뢰관계인 참여를 보장했다. 조사 과정 영상 녹화가 의무화됐다. 자백에만 의존한 기소를 제한했다.
2008년 국가배상법도 강화됐다. 억울한 옥살이 배상액 산정 기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다. 14년 인생에 4억 원이 적정한지 논란이 있었다.
경찰과 검찰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수사 매뉴얼을 개선했다. 하지만 강기훈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수사 담당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제도만 바뀌었다.
2024년 강기훈은 어디에 있는가
2024년 강기훈은 52세가 됐다. 여전히 복지시설에서 산다. 스스로 생활하기 어렵다. 지적장애에 교도소 생활로 인한 트라우마가 더해졌다.
가끔 언론 인터뷰에 응한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자기는 불을 지르지 않았다고. 14년을 억울하게 살았다고. 국가가 미안하다고 해줬으면 좋겠다고.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인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20대를 교도소에서 보냈다. 결혼도 못 했다. 가족도 없다. 혼자 늙어간다. 국가가 빼앗은 시간은 돌려줄 수 없다.
질문은 남는다
물적 증거 없이 자백만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적장애인에게 강압 수사를 했다. 14년 뒤 무죄 판결이 났지만 책임진 사람은 없다. 배상금을 줬지만 인생은 돌아오지 않는다.
왜 경찰과 검찰은 증거보다 자백에 의존했나. 법원은 왜 부실한 증거를 인정했나. 억울한 옥살이를 시킨 책임은 누가 지는가. 제도를 바꿨다고 해서 피해자의 고통이 치유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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