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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50화 여전히 죽는 노동자들 본문

2024년 1월 4일 새해 첫 출근길에서
2024년 1월 4일 오전 8시 경기도 화성시 한 배터리 공장. 새해 첫 출근이었다. 50대 협력업체 노동자가 설비 점검을 시작했다. 화학 물질 저장 탱크 밸브를 확인했다. 가스가 누출됐다. 10분 뒤 쓰러졌다.
동료가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새해 첫 산재 사망자였다. 2024년 첫 번째 노동자 죽음이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산재 사망자는 819명이었다. 하루 평균 2.2명이 일하다 죽었다. 2024년도 같은 수준으로 예상됐다.
50년 전 전태일은 무엇을 외쳤나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분신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하루 14시간 노동을 멈추라고 했다.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우하라고 요구했다.
54년이 지났다. 2024년에도 노동자는 일하다 죽었다. 건설 현장에서 떨어졌다. 공장에서 기계에 끼었다. 물류센터에서 과로로 쓰러졌다.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법은 만들어졌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었다. 하지만 죽음은 멈추지 않았다. 통계 숫자만 바뀌었다.
2024년 봄 누가 어디서 죽었나
3월 서울 강서구 한 물류센터에서 40대 노동자가 지게차에 깔려 숨졌다. 4월 경기도 평택시 건설 현장에서 30대 노동자가 12층에서 추락사했다. 5월 부산 조선소에서 60대 하청 노동자가 밀폐 공간에서 질식했다.
6월 인천 화학 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폭발 사고로 화상을 입고 사흘 뒤 숨졌다. 7월 광주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40대 일용직 노동자가 철근에 깔렸다. 8월 대구 냉동 창고에서 20대 노동자가 산소 결핍으로 쓰러졌다.
이름은 보도되지 않았다. 나이와 사고 유형만 통계에 남았다. 유족은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회사는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다음 달 또 누군가 죽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2024년 상반기 중대 산재 발생 사업장은 84곳이었다. 검찰이 수사한 사건은 37건이었다. 경영책임자 기소는 5건이었다. 대부분 현장 관리자만 처벌받았다.
한 건설사 대표가 재판을 받았다. 변호인은 안전관리체계를 갖췄다고 주장했다. 매뉴얼이 있었다. 정기 점검을 했다. 서류상 기록이 있었다.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기업들은 법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외부 로펌에 자문을 받았다. 형식적 안전관리체계로 면책받는 방법을 연구했다. 실제 현장 안전 투자는 늘지 않았다.

젊은 노동자들은 어떻게 죽었나
2024년 5월 경기도 안산시 한 금속 가공 공장. 20대 노동자가 첫 출근 3일 차였다. 프레스 기계 작업을 배웠다. 안전 교육은 30분 동영상이 전부였다. 혼자 작업하다 손을 다쳤다. 병원으로 갔지만 손가락 세 개를 절단했다.
6월 서울 송파구 물류센터에서 20대 노동자가 야간 근무 중 쓰러졌다. 입사 2주 차였다. 하루 12시간 일했다.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상자를 분류했다. 심근경색이었다. 가족에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7월 인천 한 건설 현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추락했다. 일용직이었다. 안전난간이 없는 곳에서 작업했다. 안전고리를 착용했지만 고정 지점이 없었다. 8층에서 떨어져 즉사했다.
가족은 무엇을 잃었나
2024년 4월 경기도 화성시. 30대 노동자가 화학 공장 폭발 사고로 숨졌다. 아내와 다섯 살 아들이 남았다. 아내는 장례를 치르며 산재 신청을 했다. 회사는 개인 부주의라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 조사가 시작됐다. 4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 유족 급여는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빚을 얻어 생활했다. 아이는 아빠가 언제 오냐고 물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8월 산재가 인정됐다. 유족 급여와 장례비가 나왔다. 하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아빠 얘기를 하지 않았다. 친구들 아빠는 모두 살아 있었다.
2024년 여름 한 유족 모임에서는
7월 서울 종로구 한 카페. 산재 유족들이 모였다. 김용균 어머니, 구의역 김군 아버지, 이천 물류센터 화재 유족이 함께했다. 2024년 새로 유족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한 어머니가 말했다. 아들이 건설 현장에서 추락했다고. 회사는 개인 실수라고 했다고. 안전난간이 없었는데도 노동자 탓을 했다고. 분노와 슬픔이 뒤섞였다.
다른 아버지가 말했다. 딸이 물류센터에서 과로로 쓰러졌다고. 20대였다고. 미래가 있었다고. 법이 있어도 소용없었다고. 여전히 노동자만 죽는다고. 침묵이 흘렀다.
국회와 정부는 무엇을 했나
2024년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재 사망 대책 논의가 있었다. 여야 의원들이 발언했다. 안전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경영책임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답변했다. 안전 점검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집행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 예산과 인력 계획은 없었다.
7월 기획재정부가 예산안을 발표했다. 산업안전 예산은 전년 대비 3% 증가했다. 물가 상승률보다 낮았다. 안전 감독 인력은 50명 증원에 그쳤다. 전국 사업장 수백만 곳을 감독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2024년 가을 또 누군가는
9월 충남 아산시 한 자동차 부품 공장. 50대 하청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 점검 중 끼어 숨졌다. 비상정지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2018년 김용균 사고와 같은 방식이었다. 6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다.
10월 경기도 이천시 물류 창고 건설 현장. 40대 노동자가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안전난간이 없었다. 2020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 이후 같은 지역에서 반복된 사고였다. 4년 전 38명이 죽은 곳이었다.
11월 서울 지하철 공사 현장. 30대 하청 노동자가 열차에 치였다. 안전 요원 배치가 없었다. 2016년 구의역 김군, 2022년 구의역 인근 사고와 같은 방식이었다. 8년이 지났지만 같은 사고가 반복됐다.
질문은 남는다
1970년 전태일 이후 54년이 지났다. 2018년 김용균 이후 6년이 지났다. 법이 만들어지고 제도가 바뀌었지만 노동자는 여전히 죽었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이유로 반복됐다.
왜 죽음은 멈추지 않는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 생명이 희생되는가. 법과 제도가 있어도 현장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몇 명이 더 죽어야 진짜 변화가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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