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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55화 용산참사 (2009) 본문

2009년 1월 19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서는
2009년 1월 19일 오후 7시경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5층 옥상에 망루가 세워졌다. 철거민 40여 명이 올라갔다. 철거 보상에 항의하는 농성이었다. 페인트 통과 목재로 망루를 지었다.
주변에 경찰이 배치됐다. 용산경찰서 병력이 현장을 에워쌌다. 경찰 버스가 도로를 막았다. 확성기로 해산을 요구했다. 망루에서 철거민들이 외쳤다. 제대로 보상하라고.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밤이 깊어졌다. 망루에는 불이 켜졌다. 철거민들은 밤을 보낼 준비를 했다. 라면을 끓였다. 담요를 폈다. 평화로운 농성이었다. 다음 날 새벽 상황은 급변했다.
새벽 6시 경찰 진압은 어떻게 시작됐나
1월 20일 새벽 5시 경찰청에서 진압 명령이 내려왔다. 용산경찰서에 특공대가 투입됐다. 경찰버스 20대가 추가 배치됐다. 진압 장비를 점검했다.
새벽 6시 20분 진압이 시작됐다. 경찰이 사다리차를 동원했다. 망루로 접근했다. 철거민들이 막았다. 페인트를 뿌렸다. 화염병을 던졌다. 경찰이 물러섰다.
특공대가 재진입을 시도했다. 망루 안으로 들어갔다. 철거민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최루액이 살포됐다. 망루 안에 연기가 가득 찼다. 7시 40분 불이 났다.
화재는 어떻게 발생했나
망루 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페인트 통이 폭발했다. 신나와 휘발유가 함께 탔다. 순식간에 번졌다. 망루가 불덩이가 됐다.
철거민들이 탈출하려 했다. 출구가 막혔다. 연기에 질식했다. 경찰 특공대원들도 갇혔다. 불길이 거셌다. 망루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방차가 도착했다. 방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늦었다. 7시 50분 망루가 붕괴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추락했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누가 죽었나
철거민 5명이 숨졌다. 이상림(62세), 한대성(48세), 윤용하(46세), 이석기(44세), 양회성(44세)였다. 모두 가장이었다. 생계를 위해 망루에 올랐다.
경찰 특공대원 김모(23세)가 사망했다. 진압 작전 중 망루 붕괴로 추락했다. 23세 청년이었다. 입대 1년 차였다.
20여 명이 부상했다. 화상과 골절상을 입었다. 일부는 중태에 빠졌다. 병원으로 이송됐다. 생사를 오갔다.
철거민들은 왜 망루에 올랐나
용산 한강로 일대는 뉴타운 재개발 지역이었다. 2006년 지정됐다. 건물주와 세입자가 살았다. 상가와 주택이 섞여 있었다.
2008년 철거가 시작됐다. 건물주들은 보상금을 받았다. 세입자들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 영업 손실 보상이 없었다. 이주 대책도 없었다.
철거민들이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다. 협상이 진행됐다. 평행선이었다. 재개발 조합은 보상액을 올릴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도 중재하지 않았다.

정부와 경찰은 왜 강경 진압했나
이명박 정부는 뉴타운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도심 재개발이 핵심이었다. 부동산 경기 부양이 목적이었다. 철거 반대 농성은 정책 추진에 방해가 됐다.
2008년 촛불 시위 이후 정부는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 불법 시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경찰청장이 지시했다. 불법 점거는 즉시 해산시키라고.
용산 망루 농성도 불법 점거로 규정됐다. 대화와 설득 대신 진압을 선택했다. 새벽 기습 작전이었다. 부상자 발생을 예상했다. 하지만 사망자가 나올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고 이후 정부는 무엇을 했나
1월 20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입장을 냈다.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불법 시위가 문제라고 했다.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화재 원인은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이라고 했다. 경찰 책임이 아니라고 했다.
서울시는 재개발을 계속 추진했다. 보상 기준을 바꾸지 않았다. 다른 철거 현장도 강경하게 대응했다. 용산참사는 예외가 아니라 원칙의 확인이었다.
재판은 어떻게 진행됐나
2009년 2월 생존한 철거민 24명이 기소됐다. 일반건조물침입, 화재진압방해, 공무집행방해 혐의였다. 검찰은 실형을 구형했다.
2010년 1심에서 징역 5년에서 3년이 선고됐다. 철거민들이 화재를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항소했다. 2011년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었다. 징역 4년에서 2년으로 감형됐다.
경찰은 기소되지 않았다. 진압 과정의 과실을 인정받지 못했다. 유족들이 경찰을 고소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였다. 2013년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였다.
진실은 무엇이었나
2015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용산참사를 재조사했다. 화재 원인을 분석했다. 경찰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최루액과 페인트, 신나가 혼합되며 발화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새벽 기습 진압이 문제였다. 대화 없이 강제 진압에 나섰다. 망루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소방 대비도 부족했다. 화재 발생 후 초기 대응도 미흡했다.
과잉 진압이었다. 평화로운 농성을 폭력으로 해산시켰다. 생존권 주장을 범죄로 규정했다. 6명이 죽었다. 국가는 책임지지 않았다.
2024년 1월 20일 용산에서는
2024년 1월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 참사 현장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1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유족과 시민 100여 명이 모였다.
이상림의 부인이 헌화했다. 15년이 지났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도 국가는 사과하지 않았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책임진 사람도 없다.
청년들이 피켓을 들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자고. 생존권은 범죄가 아니라고. 국가 폭력을 멈추자고. 추모제가 끝나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추모비만 남았다.
질문은 남는다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망루에 올랐다. 경찰은 새벽에 기습 진압했다. 화재가 났다. 6명이 죽었다. 정부는 사과하지 않았다. 경찰은 처벌받지 않았다. 철거민만 감옥에 갔다.
생존권을 지키려는 것이 범죄인가. 대화 대신 진압을 선택한 국가는 정당한가. 15년이 지났지만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누구의 삶이 희생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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