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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8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총칼로 짓밟힌 민주주의, 그러나 꺾이지 않은 정신" 본문

1980년 5월 18일 아침, 광주 금남로에 대학생 수백 명이 모였습니다. "전두환 물러가라!", "계엄령 해제하라!" 평화로운 시위였습니다. 하지만 공수부대원들은 곤봉을 휘둘렀습니다. 총검으로 찔렀습니다. 피가 아스팔트를 적셨습니다. 그날부터 열흘 간, 광주는 지옥이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신군부의 총칼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열흘간의 기록입니다. 공식 집계로만 사망자 165명, 부상자 3,139명. 하지만 실제 희생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암매장된 시신, 행방불명된 사람들까지 합치면 그 수를 알 수 없습니다.
유신이 끝나고 찾아온 또 다른 독재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국민들은 기대했습니다. "이제 민주주의가 오겠구나."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두 달 후인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군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고 군권을 장악했습니다.
1980년 봄, 전국에서 민주화 요구가 들끓었습니다. "유신의 잔재를 청산하라", "군인은 막사로 돌아가라". 대학가마다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신군부는 초조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권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5월 17일 밤 12시, 전두환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국회를 폐쇄하고, 정치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등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했습니다. 대학에는 군대가 들어갔습니다. 신문사와 방송국을 장악했습니다. 사실상의 쿠데타였습니다.
광주에 떨어진 공수부대의 곤봉
5월 18일 아침, 전남대학교 정문 앞. 학생들이 등교하자 공수부대원들이 무차별적으로 폭행했습니다. "이놈들아, 공부하러 가는데 왜 때려!" 학생들의 외침은 소용없었습니다. 공수부대원들은 마치 사냥감을 대하듯 학생들을 구타했습니다.
소식이 퍼지자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금남로에 수천 명이 모였습니다. "학생들을 풀어줘라!" 하지만 공수부대는 더 잔인하게 진압했습니다.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총검으로 찔렀습니다. 여성도, 노인도, 아이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임신한 여성의 배를 군홧발로 찼습니다. 젊은이의 귀를 총검으로 찢었습니다. 길 가던 시민을 끌고 가 집단 구타했습니다. 광주는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습니다. "이게 나라냐?" 시민들은 울부짖었습니다.
5월 19일, 20일,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공수부대의 진압은 더욱 무자비해졌습니다. 전남대 병원과 조선대 병원에는 부상자들이 넘쳐났습니다. 의사들은 밤새 수술했지만, 부상자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피가 부족해 시민들이 줄지어 헌혈했습니다.

시민들, 총을 들다
5월 21일 오후 1시, 광주 시내에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것입니다. 전남도청 앞에서 수십 명이 쓰러졌습니다. "사람을 죽인다!" 분노한 시민들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아시아자동차, 주남마을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을 가져왔습니다. 버스와 트럭을 몰고 와 차량 시위를 벌였습니다. "우리가 폭도가 아니라 시민이다!" 헌법과 태극기를 들고 항쟁했습니다.
21일 저녁, 계엄군은 광주 외곽으로 철수했습니다. 광주는 "해방 광주"가 되었습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총을 든 시민들이지만, 약탈도 폭력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질서정연했습니다. 상인들은 음식을 무료로 나눠줬습니다. 시민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전달했습니다. "우리가 바로 민주시민"임을 몸소 보여줬습니다.
마지막 항전, 그리고 침묵
계엄군은 광주를 고립시켰습니다. 전화선을 끊고, 도로를 차단했습니다.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서울의 신문과 방송은 "광주 폭도들이 난동을 부린다"고만 보도했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철저히 차단되었습니다.
5월 26일 밤, 계엄군이 광주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탱크와 장갑차가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시민군은 전남도청을 지키기로 결의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죽더라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5월 27일 새벽 4시,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계엄군은 전남도청을 포위하고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시민군은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윤상원, 박금희를 비롯한 수십 명이 도청에서 최후를 맞았습니다.
해가 뜨자 광주는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공포의 침묵이었습니다. 시신들은 황급히 수습되었습니다. 일부는 암매장되었습니다. 생존자들은 폭도로 몰려 구속되었습니다. 진실은 철저히 은폐되었습니다.
27년 만에 인정된 진실
전두환 정권은 광주를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동"으로 규정했습니다. 5·18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습니다. 유가족들은 "폭도의 가족"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 빨갱이로 몰렸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독일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목숨 걸고 촬영한 영상이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광주의 참상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광주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1997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내란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2011년, 5·18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2018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헬기 사격, 암매장, 행방불명자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습니다.
5월의 정신, 대한민국의 자산
5·18은 비극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시민들이 총칼 앞에서도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켰다는 것. 그것이 5·18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광주의 주먹밥은 연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시민군의 절제는 민주 시민의식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광주는 졌지만, 광주 정신은 이겼습니다.
5·18이 없었다면 1987년 6월 항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광주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전국의 시민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5월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입니다.
다음 화 예고: 6월 민주항쟁 - 최루탄 넘어 쟁취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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