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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 6화: 유신 선포와 긴급조치 본문
"헌법 위에 군림한 독재의 시대"

1972년 10월 17일 밤 7시, TV와 라디오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담화가 나왔습니다. "10월 유신"이었습니다. 국회는 해산되고, 헌법은 정지되고, 대통령에게 거의 무제한의 권력이 주어졌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날 밤 잠들었고, 7년간의 긴 어둠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국민의 자유는 철저히 짓밟혔습니다. 긴급조치라는 칼날이 국민의 목에 겨눠졌습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감옥에, 유신 반대를 외치면 고문실로. 그것이 1970년대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습니다.
영구 집권을 위한 헌법 쿠데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김대중 후보에게 고전했습니다. 겨우 94만 표 차이로 승리했지만, 국민들의 변화 열망을 실감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다음 선거에서 질 수도 있다."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아예 게임의 룰을 바꾸기로 한 것입니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습니다. 정치 활동을 금지시키고, 대학에는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11월 21일, 국민투표를 통해 유신 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찬성률 91.5%. 하지만 그것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반대하면 곧바로 잡혀가는 분위기에서 누가 감히 반대표를 던질 수 있었을까요.
유신 헌법은 무엇을 바꿨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 선출 방식이었습니다. 국민이 직접 뽑는 게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접 선거 기구가 뽑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의원들은 사실상 정부가 임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박정희가 박정희를 뽑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임기 제한도 없앴습니다. 영원히 대통령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국회의원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게 했습니다. 국회를 완전히 통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삼권분립은 무너졌고, 대통령은 제왕이 되었습니다.
긴급조치, 국민의 입을 막다
유신 헌법 제53조는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을 부여했습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영장 없이 체포하고, 법원의 판결 없이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었습니다. 헌법보다 위에 있는 권력, 그것이 긴급조치였습니다.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되었습니다. "유신 헌법을 비방하거나 개헌을 주장하는 자는 영장 없이 체포하여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단 한 마디, "유신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긴급조치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긴급조치 2호, 3호, 4호... 1974년 한 해에만 4개의 긴급조치가 발동되었습니다. 4월에는 긴급조치 4호가 발동되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관련자들을 일제히 체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앞 화에서 다룬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1975년 5월에는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되었습니다. 이것은 가장 악명 높은 긴급조치였습니다. "유언비어를 유포하거나, 집회·시위에 참가하거나, 학생의 집단 행위를 선동하는 자"를 처벌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상 모든 비판적 발언을 막는 재갈이었습니다.
대학가에 내려진 공포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된 후, 대학가는 얼어붙었습니다. 학생들은 유신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즉시 제적당하고 끌려갔습니다. 교수들도 수업 시간에 유신을 비판했다가 파면되었습니다.
1976년 3월, 명동성당에서 "3·1 민주구국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재야 인사와 종교인들이 모여 유신 철폐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시인 김지하, 문익환 목사, 이우정 신부...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5년간 912명. 실제로 체포되고 조사받은 사람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대학생, 언론인, 종교인, 야당 정치인... 유신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이 표적이었습니다.
김대중은 일본에서 납치되었습니다. 1973년 8월, 도쿄의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되어 배에 실려 한국으로 끌려왔습니다. 국제적 망신이었지만, 박정희 정권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반대파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제거해야 했습니다.

언론도, 대학도, 국민도 침묵했다
유신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침묵이었습니다. 언론은 검열을 받았습니다. 신문에는 정부 찬양 기사만 실렸습니다. 방송은 정부의 나팔수가 되었습니다. 진실을 보도하면 폐간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생들은 민주화를 외쳤지만, 교수들 대부분은 침묵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면 파면당했습니다. 연구비가 끊겼습니다. 가족이 위협받았습니다. 그래서 침묵했습니다.
일반 국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난했던 시절, 경제 발전은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이 변했고, 수출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정치적 자유는 뒤로 밀렸습니다.
하지만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했습니다. 1970년 11월, 평화시장의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긴급조치는 노동운동도 철저히 탄압했습니다.
독재는 영원하지 않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것입니다. 18년 권력의 종말이었습니다. 유신도 그날 밤 함께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유신이 남긴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긴급조치로 고문당한 사람들, 감옥에서 청춘을 보낸 학생들,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 2013년이 되어서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1호와 9호에 대해 "위헌"을 선고했습니다. 무려 4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유신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요. 헌법도, 법도, 제도도 권력자의 의지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침묵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독재의 공범이 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유신은 끝났지만, 그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음 화 예고: 부마 항쟁 - 유신의 심장을 멈춘 시민들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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