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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9화: 6월 민주항쟁"최루탄 넘어 쟁취한 민주주의" 본문

1987년 6월 10일 오후 6시, 서울 도심 곳곳에서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회사원, 교사, 주부, 상인들.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최루탄이 터지고, 물대포가 뿜어져 나왔지만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20일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행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6월 민주항쟁.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희생을 계기로 전국 34개 도시, 연인원 5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민주화 운동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29일, 전두환 정권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국민의 힘이 독재를 무너뜨린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한 대학생의 죽음이 불을 당기다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서울대생 박종철이 조사를 받다가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발표했습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진실은 물고문이었습니다. 젊은이의 머리를 물통에 처박아 질식사시킨 것이었습니다.
2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진실을 폭로했습니다. "박종철 군은 고문으로 죽었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박종철의 영정 사진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4월 13일, 전두환은 "호헌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현행 헌법대로 대통령을 간접 선거로 뽑겠다." 국민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야당과 재야는 "호헌 철폐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습니다. 대학가는 연일 시위로 들끓었습니다.
이한열, 그리고 거대한 파도
6월 9일, 연세대 교정. 시위 중이던 이한열 학생의 머리에 최루탄이 직격했습니다. 머리가 깨지고 피가 쏟아졌습니다. 친구가 부축한 채 쓰러지는 이한열의 사진은 다음날 신문 1면을 장식했습니다. 그 사진 한 장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습니다.
6월 10일,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서울 곳곳에서 시위가 터져 나왔습니다. 명동성당 앞, 시청 앞, 을지로, 종로. 경찰이 아무리 최루탄을 쏘아도 시위대는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넥타이 부대가 합류한 것입니다. 회사원들이 퇴근길에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도 국민이다!" 상점 주인들이 시위대에게 음료수를 나눠줬습니다. 택시 기사들이 경적을 울리며 연대를 표시했습니다. 이제 학생만의 시위가 아니었습니다. 국민 전체의 항쟁이었습니다.
18일간 멈추지 않은 함성
6월 10일 이후 매일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국 모든 도시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중소 도시, 농촌 마을까지 전국이 들끓었습니다.
낮에는 학생들이, 저녁에는 직장인들이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최루탄 연기가 도심을 뒤덮었습니다. 경찰은 하루 수십만 발의 최루탄을 쏘아댔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시민들은 최루탄을 되던지며 맞섰습니다.
명동성당은 피신처가 되었습니다. 경찰에 쫓기는 시위대가 성당으로 들어갔고, 김수환 추기경은 그들을 보호했습니다. "이곳은 하느님의 집이다. 경찰은 들어올 수 없다." 명동성당 앞은 매일 밤 민주화의 함성으로 가득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용기
6월 항쟁의 진짜 주인공은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30대 회사원 이종창 씨는 퇴근 후 매일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넥타이를 푼 채 "독재 타도"를 외쳤습니다. 주부들은 아파트 창문에서 냄비를 두드리며 응원했습니다.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냄비 시위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상점 주인들은 최루탄을 피해 달려오는 시위대에게 가게 문을 열어줬습니다. "빨리 들어오세요!" 약국에서는 최루탄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했습니다. 식당에서는 밥을 먹으라며 시위대를 끌어들였습니다.
심지어 택시 기사들도 연대했습니다. 6월 18일, 부산에서는 수백 대의 택시가 경적을 울리며 도심을 누볐습니다. "전두환 물러가라!" 택시 행진은 서울과 다른 도시로 퍼졌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가 독재 정권을 흔들었습니다.
6월 26일, 역사상 최대의 시위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이 열렸습니다. 전국 33개 도시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서울에만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전국적으로는 200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습니다.
시청 앞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종로도, 을지로도, 명동도 시민들로 꽉 찼습니다. "직선제 쟁취!", "호헌 철폐!" 함성이 서울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경찰은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군을 투입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유혈 진압은 안 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국제적 비난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정권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습니다.
6·29 선언, 민주주의의 승리
6월 29일 오전,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발표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겠습니다. 김대중의 사면 복권, 언론 자유 보장,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약속하겠습니다." 8개 항의 민주화 조치, 일명 "6·29 선언"이었습니다.
국민들은 환호했습니다. "우리가 이겼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울고 웃었습니다. 18일간의 항쟁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습니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7월 5일, 이한열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루탄을 맞은 지 27일 만이었습니다. 7월 9일 열린 영결식에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조문했습니다. 이한열의 관이 시청에서 연세대까지 이동하는 내내 시민들이 거리를 메웠습니다. "한열아, 이제 편히 쉬어라. 네가 원하던 민주주의를 우리가 지켜낼게."
6월의 유산, 그리고 우리의 책임
1987년 6월 항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었습니다. 4·19 혁명이 씨앗을 뿌렸고, 부마 항쟁이 물을 주었고, 5·18 광주가 피를 흘렸고, 6월 항쟁이 마침내 열매를 맺었습니다.
12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비록 노태우가 당선되었지만, 그것은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갔습니다. 정권 교체가 평화롭게 이루어졌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시민사회가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6월 항쟁이 남긴 과제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한 번 쟁취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지켜내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1987년 6월 거리로 나섰던 넥타이 부대의 용기, 냄비를 두드리던 주부들의 연대, 최루탄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던 시민들의 의지. 그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용기로 쟁취한 것입니다.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이들의 피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그 빚을 갚는 길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다음 화 예고: 노태우 3당 합당 - 민주화의 열매를 가로챈 정치 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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