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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생명과학 | 제203화 병원이 기업이 된 시대 본문

1. 진료실 밖의 숫자
2025년 2월, 서울 강남구 한 대형병원 원무팀 회의실이었습니다. 벽면 스크린에 숫자가 떠 있었습니다. 병상 가동률, 외래 환자 수, 비급여 수익 비중. 의료진이 아니라 경영진이 모여 있었습니다. 원장이 말했습니다. 이번 분기 비급여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다음 분기 계획을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병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의는 기업 실적 보고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환자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2. 의료법인의 등장
한국의 병원은 법적으로 비영리법인이어야 합니다. 이윤을 주주에게 배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영리라는 법적 형식이 실제 운영 방식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대형병원들은 계열 재단, 부속 건물 임대, 의료기기 리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합니다. 2023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개 대형병원의 평균 당기순이익은 연간 800억 원을 넘었습니다. 비영리법인이 수백억 원의 이익을 냅니다. 명목과 현실이 다릅니다.
3. 비급여 확대의 유인
병원이 수익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비급여 항목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급여 진료는 건강보험공단이 수가를 정합니다. 병원이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 없습니다. 비급여는 다릅니다. 병원이 가격을 결정합니다. 같은 도수치료가 A병원에서는 3만 원, B병원에서는 12만 원입니다. 같은 주사제가 병원마다 다른 가격입니다. 2024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서 동일 비급여 항목의 최고·최저 가격 차이는 최대 28배였습니다. 환자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병원은 이 비대칭을 활용합니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인가, 수익을 내는 곳인가

4. 수익성 중심 진료의 문제
경영 논리가 의료 현장에 침투하면 진료 결정이 달라집니다. 수익성이 낮은 필수 의료가 축소됩니다. 응급의학, 외상외과, 소아청소년과. 야간 당직이 많고 수가가 낮고 의료 분쟁 위험이 높습니다. 병원 경영 입장에서 기피 과목입니다. 반면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는 비급여 비중이 높고 수익성이 좋습니다. 의대생들이 이 과목을 선호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구조가 만든 결과이기도 합니다. 2024년 신규 전공의 지원율에서 외과 계열은 정원 미달이었고 피부과는 경쟁률 10대 1을 넘었습니다.
5. 대형병원 쏠림
병원이 기업처럼 운영되면 경쟁에서 이긴 병원이 커집니다. 서울 5대 대형병원에 하루 평균 외래 환자 수는 각각 1만 명을 넘습니다. 지방 중소병원은 환자가 줄어 폐업합니다.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전국에서 문을 닫은 병원급 의료기관은 340여 개입니다. 대형병원은 더 커지고 지방병원은 사라집니다. 환자는 서울 대형병원으로 몰립니다. 대기 시간이 늘어납니다. 경증 환자까지 대형병원을 찾습니다. 의료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이 구조화됩니다.
6. 의료쇼핑과 과잉진료
병원이 경쟁하면 환자 유치가 중요해집니다. 마케팅이 등장합니다. 건강검진 패키지, SNS 광고, 유명 의사 브랜딩. 의료기관이 상업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환자는 소비자가 됩니다. 2023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분석에서 연간 외래 진료 횟수가 365회를 넘는 가입자가 2만 명을 넘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병원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의료 필요보다 의료 접근이 쉬워진 환경이 만든 결과입니다. 과잉진료는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하고 정작 의료가 필요한 사람의 접근성을 떨어뜨립니다.
의료의 시장화
7. 간호·돌봄 노동의 희생
병원 경영 효율화의 이면에는 의료 노동자의 희생이 있습니다.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는 한국이 OECD 최하위 수준입니다. 2024년 기준 병동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평균 환자 수는 12명입니다. 미국은 4명, 호주는 5명입니다. 인력을 줄이면 인건비가 줄어듭니다. 병원 수익이 개선됩니다. 그러나 환자 안전은 위협받습니다. 간호사 번아웃과 이직률은 높아집니다. 숙련된 인력이 사라집니다. 의료의 질이 떨어집니다. 비용 절감의 결과가 환자에게 돌아옵니다.
8. 환자가 감수하는 것
병원이 기업이 된 시대에 환자는 무엇을 감수합니까. 불필요할 수 있는 검사를 받습니다. 권유받은 비급여 시술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대형병원 예약은 수개월을 기다립니다. 진료 시간은 3분입니다. 설명은 짧습니다. 질문할 시간이 없습니다. 의사는 바쁩니다. 병원은 다음 환자를 기다립니다. 회전율이 수익입니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 관계가 시스템에 의해 압축됩니다. 의료의 본질이 효율의 이름으로 희석됩니다.
수익을 내는 병원과 치료받는 환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다
9. 개인이 할 수 있는 것
병원이 기업처럼 운영되는 구조에서 환자는 소비자의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비급여 진료를 권유받으면 의학적 근거를 물어볼 권리가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병원평가 정보를 통해 병원별 진료 질 지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네 의원과 대형병원의 역할을 구분해 이용하는 것이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경증 질환은 동네 의원을 이용하면 본인부담금도 낮고 대기 시간도 짧습니다. 병원을 선택하는 안목이 의료비를 줄입니다.
10. 치료의 의미
원무팀 회의가 끝났습니다. 경영진이 나갔습니다. 복도에서 외래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번호표를 들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병원이 기업이 되어도 환자는 치료를 원합니다. 의사는 치료를 하고 싶습니다. 그 사이에 경영 논리가 끼어듭니다. 의료는 원래 돌봄이었습니다. 시장이 되기 전에 관계였습니다. 환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증상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의료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병원이 기업이 된 시대에 그 출발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의료의 마지막 공공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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