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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78화 같은 일, 다른 사람 — 비정규직 차별은 어떻게 구조가 되었나 본문

같은 건물, 같은 시간, 다른 밥상
서울 어느 대기업 본사 구내식당의 점심 시간이었습니다. 정규직 직원들이 줄을 서는 식당 옆에 별도의 공간이 있었습니다. 청소와 경비,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용역 직원들은 그 공간에서 따로 밥을 먹었습니다. 같은 건물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밥상은 달랐습니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어 언론에 보도된 것은 2010년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관행이 시작된 것은 훨씬 오래전이었습니다. 구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오래되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비정규직은 언제부터 이렇게 많아졌나 — 외환위기 이후의 고용 지형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의 노동시장은 장기 고용과 연공서열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 요구와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 맞물리면서 고용 유연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파견근로자보호법이 1998년 시행되면서 파견 노동이 합법화되었고,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정규직 채용을 줄이고 계약직과 파견직을 늘려나갔습니다. 2000년대 중반 통계청 조사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35퍼센트를 넘어섰습니다. 600만 명 이상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예외적인 고용 형태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표준 중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임금 격차는 얼마나 벌어졌나
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용 형태에 따라 임금이 달랐습니다. 2000년대 후반 통계를 보면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간당 임금으로 환산해도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임금 외의 조건은 더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정규직에게 지급되는 상여금, 성과급, 각종 수당이 비정규직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명절 상여금을 받지 못하는 직원, 연차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직원, 회식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는 직원들이 같은 사무실 안에 존재했습니다.
같은 책상, 같은 컴퓨터, 같은 업무지시. 그러나 월급날은 달랐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못 했나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었습니다. 핵심은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이었습니다. 입법 취지는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작동했습니다. 기업들은 2년이 되기 직전에 계약을 종료하는 방식으로 법을 피해갔습니다. 근로자는 정규직 전환 대신 고용 종료를 통보받았습니다. 법이 보호하려던 사람들이 오히려 법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역설이 반복되었습니다. 보호법이 고용 불안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입법 효과를 둘러싼 논쟁은 오래 이어졌습니다.
같은 일 다른 대우, 어디까지 허용되었나
비정규직 차별 시정 제도가 도입되어 고용노동부 산하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할 수 있는 경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제도를 실제로 이용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신청 절차가 복잡했고, 시정 결정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으며, 무엇보다 신청 자체가 고용주와의 갈등을 의미했습니다.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거나 재계약이 필요한 상황에서 차별 시정을 신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제도는 존재했지만 문을 두드리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그 문은 사실상 닫혀 있었습니다.
감정노동자는 어디 있었나
비정규직 차별의 또 다른 얼굴은 감정노동이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 마트 계산원, 항공사 승무원, 백화점 판매직원 상당수가 비정규직이거나 용역 형태로 고용된 노동자였습니다. 이들은 고객의 폭언과 부당한 요구를 견디는 것이 직무의 일부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의 가치는 임금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사업주가 고객의 폭언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에도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누가 책임졌나
민간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에도 수십만 명의 비정규직이 있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교직원, 공공기관 청소 노동자, 지방자치단체 소속 계약직 행정 인력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었습니다. 전환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과의 처우 형평성 문제, 자회사 방식 전환을 둘러싼 논란, 예산 확보 문제가 얽히면서 정책은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정규직 전환이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은 무엇을 결정했나
고용 형태는 단순히 임금의 차이를 넘어 삶의 조건 전반을 규정했습니다. 비정규직은 대출 심사에서 불리했습니다. 전세 계약을 맺을 때 소득 증빙이 어려웠습니다. 결혼과 출산, 주거 계획을 세우는 일이 고용의 불안정성 앞에서 계속 미뤄졌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는 경제적 조건이자 사회적 지위였으며,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가가 삶의 궤도를 갈랐습니다.
질문은 남는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다른 임금을 주는 것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비정규직 보호를 목적으로 만든 법이 왜 고용 불안을 심화시켰는가. 공공부문이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고용해온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고용 형태가 삶의 설계 능력을 결정하는 사회는 공정한가. 비정규직 문제는 언제쯤 해결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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