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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75화 악플은 왜 사람을 죽이는가 — 사이버 불링과 혐오의 시대 본문

그날 밤 그녀의 휴대폰에는 무슨 말들이 쌓여 있었나
2019년 10월, 배우 설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25세였습니다. 같은 해 11월, 가수 구하라도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29세였습니다. 두 사람은 생전에 온라인 악성 댓글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설리는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악플로 인한 고통을 직접 토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댓글창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죽음이 잇따르고 나서야 사회는 비로소 멈춰 서서 그 댓글창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이버 불링은 어떻게 진화했나 — 온라인 혐오의 구조와 확산
디지털 환경에서의 괴롭힘은 물리적 공간의 폭력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가해자는 익명 뒤에 숨을 수 있고, 피해자는 24시간 어디서든 공격에 노출됩니다. 학교 폭력은 집에 오면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폰은 그 도피 공간을 없앴습니다. 단체 채팅방에서의 집단 따돌림, 특정인의 사진과 개인정보를 유포하는 행위, 게시물마다 달라붙는 악의적 댓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피해자는 공격의 전모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어디서, 누가, 얼마나 많이 자신을 공격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연예인만의 문제였나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이 공론화를 이끌었지만, 사이버 불링은 연예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활용한 집단 괴롭힘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피해 학생을 채팅방에 초대한 뒤 집단으로 모욕하거나, 퇴장하면 다시 초대하는 방식이 반복되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개인을 표적으로 삼아 신상을 털고 직장이나 학교에 허위 사실을 제보하는 신상털기 문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피해자의 나이와 성별, 직업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악플은 취미가 아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혐오는 어디서 왔나 — 온라인 혐오 표현의 뿌리
온라인 혐오 표현은 특정 집단을 향한 조직적 공격의 형태로도 나타났습니다. 여성,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게시물이 커뮤니티 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되었습니다. 일부 커뮤니티는 혐오 표현 생산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이용자들은 혐오를 유머나 밈의 형식으로 포장해 확산시켰고, 그 과정에서 표현의 폭력성은 희석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수신자에게 가해지는 심리적 충격은 희석되지 않았습니다. 혐오는 웃음처럼 퍼지면서 상처처럼 박혔습니다.
플랫폼은 무엇을 했나 — 포털과 소셜미디어의 대응
설리 사망 이후 포털 사이트들의 댓글 정책이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다음은 2019년 10월 연예 뉴스 댓글 기능을 전면 폐지했습니다. 네이버는 연예 기사 댓글을 잠정 중단한 뒤 이용자 클린봇 시스템을 강화하고 댓글 운영 방식을 개편했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도 혐오 표현 필터링 기능을 업데이트했습니다. 그러나 플랫폼의 대응은 사후적이고 부분적이었습니다. 댓글창이 닫힌 자리에서 혐오는 다른 경로를 찾아 이동했습니다. 익명 커뮤니티와 오픈 채팅방이 새로운 공간이 되었습니다.
법은 어디까지 닿았나 — 사이버 명예훼손과 처벌의 한계
정보통신망법은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처벌이 이루어지는 비율은 낮았습니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하는 구조였고, 익명 게시물의 경우 작성자를 특정하기 위한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렸습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2차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악플러 처벌 강화와 인터넷 실명제 논의가 반복적으로 제기되었으나,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문제로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두 죽음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 직후 연예인 악플 방지를 위한 법안들이 발의되었습니다. 이른바 설리법, 구하라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법안들은 악성 댓글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절차 개선을 골자로 했습니다. 일부 조항은 통과되었으나 전면적인 제도 개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소속사들은 전담 법무팀을 꾸려 악플러 고소를 본격화했습니다. 인식은 바뀌었습니다. 악플이 취미가 아니라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댓글창은 오늘도 열려 있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혼자 버티고 있습니다.
질문은 남는다
익명은 자유인가, 면죄부인가. 플랫폼은 혐오 표현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가. 악플러는 자신이 가한 피해를 인식하고 있는가. 연예인의 죽음 이후에야 법이 움직이는 사회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댓글창을 닫는 것으로 혐오는 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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