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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26화 세월호 침몰 (2014) - 304명의 목숨과 국가의 무능 본문

역사 & 현대 사회/대한민국 근현대사

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26화 세월호 침몰 (2014) - 304명의 목숨과 국가의 무능

raon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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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당시의 긴박한 구조 상황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전남 진도군 병풍도 인근 해상.

세월호가 급선회합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8시 52분.
승객 한 명이 119에 신고합니다.
"배가 기울어지고 있어요."

8시 55분.
선내 방송이 나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이동하지 마시고 가만히 계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객실 안에서.
침대에 누운 채로.

배는 계속 기울어갑니다.


세월호는 어떤 배였을까

1994년 일본에서 건조.
나미노우에(浪の上).
18년 운항 후 한국에 매각됩니다.

2012년.
청해진해운이 인수.
세월호로 개명.

증축 공사가 진행됩니다.
5층 선실 추가.
차량 적재 공간 확대.

복원력이 약해집니다.
하지만 한국선급의 검사를 통과합니다.

2014년 4월 15일 저녁.
인천항을 출발합니다.
제주도행.

승객 476명.
화물 3,608톤.

과적이었습니다.


8시 48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타실.
3등 항해사가 키를 잡고 있습니다.
25세.

급선회 명령이 떨어집니다.
키를 5도에서 15도로 돌립니다.

배가 빠르게 틀어집니다.
화물이 한쪽으로 쏠립니다.
고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화물들.

배가 왼쪽으로 기웁니다.
30도.
45도.
60도.

복원되지 않습니다.


선장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준석 선장.
69세.

8시 48분 당시.
조타실에 없었습니다.
선실에 있었습니다.

배가 기울자 조타실로 옵니다.
하지만 조치를 내리지 않습니다.

9시 23분.
해경 경비정이 도착합니다.

9시 30분경.
이준석 선장이 배에서 나옵니다.
승객인 척합니다.

선원 15명 중 11명이 탈출합니다.
선장 포함.

승객 476명은 배 안에 남아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누가 말했을까

8시 52분부터.
선내 방송이 반복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이동하지 마시고 가만히 계시기 바랍니다."

누가 방송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선원인지.
자동 방송인지.

하지만 학생들은 따릅니다.
단원고 2학년 325명.
제주도 수학여행 중이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지시를 따릅니다.
"가만히 있어라."

배는 계속 기웁니다.
9시가 넘어서면 70도 이상.

객실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물이 차오릅니다.


인양된 세월호

구조는 왜 늦었을까

9시 30분.
해경 경비정 123정이 도착합니다.

하지만 승객을 구조하지 않습니다.
선장과 선원들만 태웁니다.

헬기가 옵니다.
하지만 승객을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언론 헬기만 주위를 맴돕니다.
생중계가 시작됩니다.

전국민이 TV로 지켜봅니다.
배가 기우는 것을.
아무도 나오지 않는 것을.

10시 17분.
배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10시 31분.
배가 가라앉습니다.


304명은 어떻게 됐을까

단원고 학생 250명 사망.
교사 11명 사망.
일반 승객 43명 사망.

총 304명.

일부는 객실에서 발견됩니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서로 껴안은 채.

일부는 복도에서 발견됩니다.
나가려다 갇힌 채.

일부는 끝내 발견되지 않습니다.
5명.

2017년 세월호 인양.
선체 내부에서 유해 일부 수습.

하지만 여전히 실종자가 남아 있습니다.


그날 청와대에서는

4월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 일정.
공백 7시간.

비서실도 모릅니다.
경호실도 모릅니다.

누구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나타납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왜 구조하지 못했습니까?"

질문만 합니다.
지시는 없습니다.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은 무엇을 요구했을까

4월 17일.
팽목항에 유가족들이 모입니다.

"우리 아이를 찾아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주검뿐입니다.

분향소가 차려집니다.
영정 사진이 늘어납니다.

유가족들이 요구합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

단식을 시작합니다.
광화문 광장에 천막을 칩니다.


재판은 무엇을 밝혔을까

이준석 선장.
살인죄 적용 여부 논란.

1심 사형.
항소심 무기징역.
대법원 무기징역 확정.

선원 11명도 유죄.
징역 5년~30년.

청해진해운 대표 구속.
업무상 과실치사.

해경 123정장도 기소.
직무유기. 징역 3년.

하지만 유가족들은 묻습니다.
"왜 구조하지 못했습니까?"
"왜 7시간이 비어 있습니까?"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월호는 언제 올라왔을까

2017년 3월 23일.
인양 작업 시작.

바지선 두 척.
와이어 66개.

천천히 들어 올립니다.
3년 만입니다.

3월 24일.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옵니다.

선체는 녹슬어 있습니다.
선실 내부에는 유해가 남아 있습니다.

목포신항으로 이송됩니다.
조사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침몰 원인은 여전히 논란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2024년 4월 16일.
10주기 추모식.

304명의 이름이 불립니다.
단원고 학생들.
교사들.
일반 승객들.

유가족들은 여전히 묻습니다.
"왜 구하지 못했습니까?"

국가는 답하지 못합니다.

세월호는 목포에 전시됩니다.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하지만 기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반복되는 질문

왜 배는 침몰했을까요.
왜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까요.
왜 선장은 먼저 탈출했을까요.

왜 해경은 구조하지 않았을까요.
왜 7시간은 비어 있었을까요.
왜 304명을 구하지 못했을까요.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요.
우리는 정말 배웠을까요.

질문은 남습니다.
304명과 함께.

그래서 2014년 4월 16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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