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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생명과학 | 제209화 노인의료와 연명치료의 딜레마 본문

🍀2026 대한민국/보건 의료 생활

보건·의료·생명과학 | 제209화 노인의료와 연명치료의 딜레마

raon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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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앞 복도의 무게

 

1. 중환자실 복도

2025년 1월, 부산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앞 복도였습니다. 67세 김영철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안에 있었습니다. 94세였습니다. 폐렴으로 입원한 것이 3주 전이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달았습니다. 의식이 없었습니다. 의사가 나왔습니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영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살고 싶다고 했을까. 이런 상태로 살고 싶다고 했을까.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복도가 길게 느껴졌습니다.

 

2. 초고령 사회의 의료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노인 인구가 늘수록 말기 질환과 임종기 의료 수요도 증가합니다. 2024년 기준 건강보험 전체 지출의 43%가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였습니다. 그 중 생애 마지막 1년에 쓰이는 의료비가 전체 노인 의료비의 30%를 넘습니다. 마지막 한 달이 마지막 1년 의료비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임종 직전에 집중되는 의료 자원의 문제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3. 연명치료의 현실

연명치료는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료 행위입니다.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가 포함됩니다. 의학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 치료들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가족이 포기했다는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 합니다. 의사는 소송이 두렵습니다. 병원은 병상 가동률과 수익을 고려합니다. 환자 본인의 의사는 종종 마지막으로 고려됩니다. 연명치료가 환자를 위한 것인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경계가 흐려집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삶을 존중하는 것이다

 

연명의료와 호스피스 현황

 

4. 사전연명의료의향서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습니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해두는 문서입니다. 의식이 없어졌을 때 어떤 치료를 원하지 않는지 본인이 결정합니다. 2024년 기준 누적 등록자는 약 230만 명입니다. 전체 성인 인구의 5%입니다. 제도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아직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불길하다는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결정은 가족에게 넘어갑니다.

 

5. 가족의 짐

연명치료 결정은 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가족에게 넘어옵니다. 가족은 의학 지식이 없습니다. 감정적으로 극한 상황입니다. 의사가 설명하지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더 하면 고통을 연장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선택도 편하지 않습니다. 이 결정을 내린 후 남은 가족이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명치료 중단 결정은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심판처럼 느껴집니다. 제도가 있어도 현실의 무게는 다릅니다.

 

6. 호스피스 완화의료

연명치료의 대안은 호스피스 완화의료입니다. 치료보다 통증 완화와 삶의 질에 집중합니다. 임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남은 시간을 존엄하게 살도록 돕습니다. 2024년 기준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23%였습니다. 10명 중 2명입니다. 호스피스 병상이 부족합니다. 전국 호스피스 병상 수는 약 1,600개입니다. 암 외 말기질환자는 호스피스 적용이 제한적입니다. 심부전, 만성폐쇄성폐질환, 간경화 말기 환자는 아직 제도 밖입니다. 좋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존엄한 마지막


7. 요양병원의 현실

한국의 노인 의료에서 요양병원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2024년 기준 전국 요양병원은 1,400여 개입니다. 병상 수는 약 32만 개입니다. 급성기 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노인 환자가 이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요양병원의 질적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됩니다. 인력 부족, 욕창 관리 소홀, 과도한 약물 투여. 2023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현지조사에서 요양병원의 30%에서 의료 인력 기준 위반이 발견됐습니다. 마지막을 보내는 곳의 현실이 마지막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8. 죽음 교육의 부재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터부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병원에서도 회피합니다. 의사가 예후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꺼립니다. 가족이 환자에게 진단을 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회피가 사전 준비를 막습니다. 자신이 어떤 죽음을 원하는지 생각해본 사람이 드뭅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아직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연명치료를 선택하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존엄의 문제다

 

9. 개인이 준비할 수 있는 것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지금 바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전국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 무료로 작성합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에서 가까운 등록기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족과 임종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치료를 원하는지, 어디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지, 연명치료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불편한 대화이지만 이 대화가 가족을 극한의 결정에서 구합니다. 준비한 죽음이 남은 사람의 삶도 지킵니다.

 

10. 복도의 결정

김영철은 다음 날 다시 의사를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생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기계에 의존해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밥상 앞에서 지나가듯 한 말이었습니다. 문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있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유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흘 후 아버지는 숨을 거뒀습니다. 김영철은 울었습니다. 잘한 것인지 아직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는 것은 압니다. 죽음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 이 복도에서의 무게를 조금 덜어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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