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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93화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터져 나온 날 — 미투 운동 본문

2018년 1월 29일, 검사 한 명이 카메라 앞에 섰다
JTBC 뉴스룸이었습니다. 서지현 검사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8년 전 법무부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피해 사실을 알렸더니 인사 보복을 받았다고. 방송이 나간 직후 인터넷은 멈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가 그의 이름으로 채워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직장인들은 출근길에 그 인터뷰를 이야기했습니다. 검사였습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많은 사람들의 무언가를 건드렸습니다.
미투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 세계적 흐름과 한국의 맥락
미투(MeToo)라는 표현은 2006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를 위해 처음 사용했습니다. 2017년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가 폭로되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문제가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한국 사회의 위계적 조직 문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의 관행,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 불균형이 이미 오랫동안 존재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까지 퍼졌나 — 문화예술계에서 정치권까지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고백은 연쇄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문학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명 시인과 소설가들의 이름이 거론되었습니다. 연극계, 영화계, 미술계로 번졌습니다. 오랫동안 문화적 권위로 보호받아온 이름들이 하나씩 호명되었습니다. 대학교수와 교사, 의사, 종교인, 지방의원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충청남도지사 안희정은 수행비서에 의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었고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서울시장 출신 정치인 박원순은 비서의 성희롱 고소장이 제출된 날 사망했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침묵을 지킨 것이 아니었다.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없었던 것이었다.

피해자들은 왜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나
미투 운동이 드러낸 것은 개별 사건들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피해가 반복되고 은폐될 수 있었는가라는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피해자들은 말했을 때 겪게 될 결과를 알고 있었습니다. 조직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두려움, 오히려 자신이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공포, 가해자의 보복이 실제로 이루어졌던 경험이 침묵을 강요했습니다. 위계가 강한 조직일수록 피해자의 고립은 더 깊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신고 경로가 없었고, 신고했을 때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구조가 침묵을 만들었습니다.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미투 이후 고소와 고발이 이어졌습니다. 일부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법적 처벌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혐의 처분이나 무죄 판결이 나온 경우도 많았습니다. 일부 피해자들은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법정 공방이 길어지는 동안 피해자들은 다시 한번 자신의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폭로의 용기와 법적 정의 사이에는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했습니다.
백래시는 어떻게 왔나
미투 운동이 확산되자 반발도 거세졌습니다. 무고 피해를 우려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남성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일부 직장에서는 남성 상사들이 여성 직원과 단둘이 있는 자리를 피하는 이른바 펜스 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회피였습니다. 여성과의 협업 자체를 기피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오히려 여성의 직업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제도는 어떻게 바뀌었나
미투 운동 이후 성희롱·성폭력 관련 법과 제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신고 절차와 피해자 보호 조항이 강화되었습니다. 문화예술계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피해 지원 센터가 설치되었습니다. 공공기관과 기업에 성희롱 예방 교육 의무화가 강화되었습니다. 군대와 학교, 종교기관 내 성폭력에 대한 수사와 처벌 강화 논의도 이어졌습니다. 제도의 변화는 이전보다 빨랐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가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미투 이후 무엇이 남았나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을 공론화하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피해자의 폭로를 무조건 의심하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권위 있는 이름이 면죄부가 되던 관행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조직 내 위계가 폭력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작동해왔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운동으로 구조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신고를 망설이는 피해자들이 있었고, 보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투는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었습니다.
질문은 남는다
피해자가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게 만든 구조는 누가 만들었는가. 폭로와 법적 증명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좁혀질 수 있는가. 백래시는 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가. 권력과 위계가 있는 곳에서 성폭력은 왜 반복되는가. 미투 이후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은 각각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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