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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간·부동산의 미래: 104화 주거비가 삶을 잠식하는 구조 본문

2023년 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원룸.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5만 원. 방 크기는 3평. 창문을 열면 맞은편 건물 벽이 보인다. 29살 직장인 김민수는 월급 250만 원 중 55만 원을 월세로, 30만 원을 교통비와 식비로 쓴다. 저축? 불가능하다. 이 방에서 10년을 살아도 집을 살 가능성은 없다.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월세는 미래를 구매하는 비용이 아니라, 현재를 연장하는 대가라는 것을.
주거비는 더 이상 생활비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삶 전체를 규정하는 구조가 되었다. 결혼, 출산, 이직, 창업. 모든 선택이 주거비 앞에서 멈춘다. 월세 100만 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과 50만 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의 인생 설계는 완전히 다르다. 같은 월급을 받아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주거비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계층을 고정시키는 장치다.
1945년 영국. 전후 복구 과정에서 노동당 정부는 대규모 공공주택 건설에 나섰다. "모든 국민에게 적정한 주거를"이라는 슬로건 아래, 10년간 100만 호를 지었다. 임대료는 가구 소득의 20%를 넘지 않도록 규제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주거비가 삶을 잠식하지 않게 만드는 것. 노동자들이 임금의 절반을 집세로 내느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를 끊어내는 것.
하지만 1980년대 대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책이 바뀌었다. 공공주택을 입주자에게 매각하기 시작했다. '재산소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결과는? 단기적으로는 수십만 명이 집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공주택 재고가 급감했다. 새로운 세대는 저렴한 집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런던의 평균 주거비 비율은 1980년 20%에서 2020년 40%로 올랐다.
한국은 더 극단적이다. 2024년 서울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주거비 비율은 45%를 넘는다. 소득 200만 원이면 90만 원이 주거비로 나간다. 전세는 이미 선택지가 아니다. 보증금 1억 원을 모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월세로 살 수밖에 없고, 월세는 계속 오른다. 2015년 신림동 원룸 월세가 40만 원이었다면, 2024년에는 60만 원이다. 임금은 10% 올랐지만, 월세는 50% 올랐다.
주거비가 삶을 잠식하는 첫 번째 메커니즘은 '소득 대비 비율의 상승'이다. 1990년대 서울 가구의 평균 주거비 비율은 15%였다. 2024년에는 30%를 넘는다. 문제는 소득 하위 20%의 경우 이 비율이 50%를 초과한다는 점이다. 월급 150만 원을 받으면서 월세 80만 원을 내는 사람들. 남은 돈으로 먹고, 입고, 교통비를 내야 한다. 저축은 사치다.
두 번째는 '자산 축적 불가능 구조'다. 전세는 목돈을 묶어두지만, 계약이 끝나면 돌려받는다. 그 돈으로 더 큰 전세로 옮기거나, 모아서 집을 산다. 하지만 월세는 다르다. 매달 나간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10년 동안 월세 60만 원을 내면 7200만 원이 증발한다. 그 돈이면 소형 아파트 계약금이다. 월세는 자산 형성의 기회를 박탈한다.
세 번째는 '이동성의 제약'이다. 더 나은 직장 제안을 받았지만, 이사 비용 때문에 포기한다. 보증금을 옮기려면 중개 수수료, 이사 비용, 새 집 수리비까지 최소 300만 원이 든다. 월급 200만 원짜리 직장인에게 300만 원은 1.5개월 치 월급이다. 결국 안 좋은 직장에 계속 다닌다. 주거비가 경력 개발을 막는 것이다.
네 번째는 '생애 주기의 왜곡'이다. 30대 후반 직장인 부부. 합산 소득 600만 원. 전세 보증금 4억 원을 대출받아 살고 있다. 이자만 월 130만 원이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그러면 육아 휴직으로 소득이 줄어든다. 이자를 못 낼 수 있다. 결국 출산을 미룬다. 40대가 되면 아예 포기한다. 주거비가 인구 구조를 바꾸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평균 월세가 3500달러, 한화로 450만 원이다. 테크 기업 엔지니어 연봉이 15만 달러(1억 9천만 원)여도, 세후 월 8000달러 중 절반이 집세로 나간다. 그래서 생긴 현상이 '밴 라이프'다. RV나 승합차를 개조해서 산다. 구글 본사 주차장에서 자고, 회사 샤워실을 쓴다. 연봉 1억이 넘는 엔지니어가 차에서 잔다. 주거비가 정상적 삶의 형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홍콩은 더 극단적이다. '관 아파트'라 불리는 초소형 주거 공간. 1.5평에 월세 60만 원. 누우면 천장이 손에 닿는다. 이곳에 20만 명이 산다. 홍콩 청년의 평균 월급은 300만 원인데, 평균 월세는 150만 원이다. 소득의 절반이 주거비로 나간다. 결혼율은 추락하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의 독특한 문제는 '전세 제도의 붕괴'다. 전세는 한국만의 특이한 시스템이었다. 목돈을 맡기고 무이자로 집을 쓴다. 집주인은 그 돈을 굴려서 수익을 낸다. 저금리 시대에는 작동했다. 하지만 2022년 금리가 급등하자 전세가 역전되었다. 전세 보증금보다 집값이 낮아진 것이다.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되었다. '깡통 전세' 피해자가 속출했다.
2023년 통계를 보면, 서울 전세 비율이 2010년 50%에서 2023년 25%로 급락했다. 대신 월세가 75%로 증가했다. 전세를 놓던 집주인들이 월세로 전환한 것이다. 월세는 안정적 현금흐름을 만든다. 세입자에게는 재앙이지만, 집주인에게는 합리적 선택이다. 주거 시스템 전체가 '자산가 유리'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약속한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다. 2024년 기준 서울 공공임대 비율은 8%다. OECD 평균인 20%의 절반도 안 된다. 게다가 공공임대 입주 조건이 까다롭다. 소득 하위 30%만 가능하다. 소득 하위 31~60% 계층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 민간 월세 시장에서 알아서 살아야 한다.
민간 임대 시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집주인은 월세를 최대한 올리려 한다. 세입자는 버틸 수 있는 한 버틴다. 계약 갱신 때마다 월세가 오른다. 법으로 5% 상한제가 있지만, 새 세입자에게는 적용 안 된다. 2년마다 이사하면서 계속 오른 월세를 받아들인다. 장기 거주는 불가능하다. 동네에 뿌리내리는 것,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 그런 건 사치가 된다.
주거비 부담이 삶의 질을 어떻게 바꾸는가? 2022년 한 연구에 따르면, 주거비 비율이 30%를 넘으면 문화생활 지출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영화, 공연, 외식. 이런 것들이 사라진다. 40%를 넘으면 건강 관리비가 준다. 병원 가는 것을 미룬다. 50%를 넘으면 식비를 줄인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주거비가 인간다운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세대를 건너 대물림된다. 부모가 월세로 살면, 자녀도 월세로 산다. 부모에게 증여받을 목돈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연구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의 주거 형태는 부모의 자산 수준과 85% 상관관계를 보인다. 부모가 집이 있으면 자녀는 전세로 시작한다. 부모가 월세로 살았으면 자녀도 월세다. 주거비는 계급을 재생산하는 가장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신림동 원룸의 김민수는 오늘도 퇴근 후 편의점 도시락을 데운다. 월세일이 다가오면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이번 달도 55만 원은 있다. 안도한다. 하지만 10년 후를 상상하면 막막하다. 10년 동안 6600만 원을 월세로 낼 것이다.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주거비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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