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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간·부동산의 미래: 103화 기업이 도시를 선택하는 기준 본문

🍀2025 대한민국/주거 환경

도시·공간·부동산의 미래: 103화 기업이 도시를 선택하는 기준

raon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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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CO 본사와 황금빛 도시 풍경

2018년 11월, 아마존은 제2본사 입지를 발표했다. 238개 도시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시카고는 20억 달러 세제 혜택을 제시했고, 뉴저지는 70억 달러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결과는 뉴욕과 버지니아였다. 그런데 1년 뒤 아마존은 뉴욕 입주를 철회했다. 이유는 지역 주민 반발. 25,000개 일자리를 포기한 것이다. 기업의 도시 선택은 단순한 경제 계산이 아니었다. 정치, 문화, 인프라, 인재 풀이 얽힌 복합 방정식이었다.

 

기업이 특정 도시에 자리 잡는다는 것은, 그 도시의 미래 10년을 결정하는 일이다.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 주변은 협력업체 생태계가 형성되어 15만 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네이버가 판교에 본사를 세우자 IT 스타트업 300개가 따라왔다. 기업은 단독으로 오지 않는다. 생태계를 데려온다. 그래서 도시들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수조 원을 쏟아붓는다.

 

195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 GM, 포드, 크라이슬러 빅3 자동차 회사가 집중된 이 도시의 인구는 185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중산층 가구 소득은 전국 평균의 150%였다. '모터시티'라는 별명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자동차 산업이 쇠퇴하자 도시도 함께 무너졌다. 2013년 디트로이트는 파산했다. 인구는 68만 명으로 줄었다. 한 산업, 몇 개 기업에 의존한 도시의 운명이었다.

 

반대 사례도 있다. 1990년대 초 핀란드 오울루. 인구 12만의 북극권 소도시였다. 노키아가 이곳에 R&D 센터를 세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울루 대학의 무선통신 연구 역량 때문이었다. 노키아는 대학과 공동 연구소를 만들고, 졸업생을 채용했다. 20년간 200개 IT 기업이 생겼고, 도시 GDP는 3배 증가했다. 노키아가 몰락한 이후에도 오울루는 살아남았다. 생태계가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도시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인재 풀'이다. 구글이 마운틴뷰에 있는 이유는 스탠퍼드, 버클리가 가깝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텍사스로 본사를 옮긴 것도 텍사스 대학 오스틴 캠퍼스의 공학 인력 때문이다. 기업은 인재가 있는 곳으로 간다. 하지만 동시에 인재도 기업이 있는 곳으로 간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학이 먼저다. 실리콘밸리도 처음엔 스탠퍼드 졸업생들의 차고에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는 '생활 인프라'다. 2010년대 중반, 한국 IT 기업들이 판교 테크노밸리로 대거 이전했다. 이유 중 하나가 '살 만한 동네'였다. 좋은 학군, 쾌적한 주거 환경, 문화시설. 직원들이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할 수 있고,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네이버 직원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세대다. 판교는 그 조건을 충족했다.

 

세 번째는 '세제 및 규제 환경'이다. 테슬라가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로 간 결정적 이유는 법인세였다. 캘리포니아는 8.84%, 텍사스는 0%다. 1년에 수천억 원 차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구글, 애플, 페이스북 유럽 본부가 몰린 이유도 법인세 12.5% 때문이다. 기업에게 세금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네 번째는 '물류 접근성'이다. 아마존이 버지니아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덜레스 국제공항이었다. 하루 300편 이상의 화물기가 뜬다. 전 세계 어디든 48시간 안에 배송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베트남 박닌성에 스마트폰 공장을 세운 것도 하이퐁 항구와의 거리 때문이었다. 완제품을 배로 실어 전 세계로 보낼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정부 지원'이다. 2021년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170억 달러 규모 반도체 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텍사스주는 향후 10년간 12억 달러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중국 선전시가 1980년대 황무지에서 제조업 허브가 된 것도 덩샤오핑의 경제특구 정책 덕분이었다. 세금 감면, 토지 무상 제공, 규제 완화.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도시에 기업이 몰린다.

 

하지만 최근 기업의 도시 선택 기준이 바뀌고 있다. 2020년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 가능성'이 새로운 변수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IT 기업들이 마이애미, 오스틴으로 이전했다. 굳이 비싼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줌, 슬랙으로 협업하면 된다. 사무실은 분기에 한 번 모이는 공간으로 충분하다.

 

2022년 쇼피파이는 본사 개념 자체를 없앴다. "디지털 퍼스트" 정책이다. 직원들은 전 세계 어디서든 일한다. 토론토 본사 건물은 매각했다. 이런 기업에게 '도시 선택'은 의미가 없다. 대신 '국가 선택'이 중요해진다. 법인세, 노동법, 데이터 규제가 기준이 된다.

 

한국의 경우, 기업들의 도시 선택 패턴이 독특하다. 대기업 본사는 여전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삼성, LG, 현대차, SK 모두 서울이 본사다. 제조 시설은 지방에 있지만, 의사결정 중추는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 이유는 '정부와의 근접성'이다. 규제 대응, 정책 로비, 관료와의 네트워킹. 이 모든 것이 서울에서만 가능하다.

 

2000년대 초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있었다. 정부가 세종시로 가면 기업도 따라갈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공무원은 세종으로 갔지만, 기업은 서울에 남았다. 주요 의사결정자들이 여전히 서울에 살고, 국회가 서울에 있고, 금융기관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행정도시'가 되었을 뿐, '경제수도'는 되지 못했다.

 

흥미로운 변화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부산, 대구, 광주에 지역 거점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다. 부산의 게임 회사들, 대구의 섬유-패션 테크 기업들, 광주의 AI 스타트업들. 이들은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다. 이유는 '틈새 인재'다. 서울에서는 네이버, 카카오에 밀려 채용이 어렵지만, 지역에서는 좋은 인재를 구할 수 있다.

 

2024년 현재, 기업의 도시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지속가능성'이다. ESG 경영이 대세가 되면서, 기업들은 탄소중립 도시를 선호한다. 재생에너지 접근성, 대중교통 인프라, 녹지 비율. 구글은 신규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때 100% 재생에너지 공급 가능 지역만 고려한다. 도시의 환경 정책이 기업 유치의 핵심 조건이 된 것이다.

 

결국 기업이 도시를 선택하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1950년대에는 원자재와 물류, 1980년대에는 세제와 토지, 2000년대에는 인재와 문화, 2020년대에는 지속가능성과 유연성이 핵심이 되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기업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것.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는 도시, 다른 기업과 인재가 이미 모여 있는 도시를 선택한다.

 

아마존 제2본사 유치 경쟁에서 탈락한 237개 도시는 무엇을 배웠을까. 돈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대학, 공항, 주거 환경, 문화, 정치적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기업이 온다. 그리고 기업이 오면 도시가 바뀐다. 집값이 오르고, 일자리가 생기고, 계층이 재편된다. 기업의 도시 선택은 그 도시 주민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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