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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18화: 부산 구봉산 산사태 "무분별한 개발이 부른 재앙" 본문

1972년 8월 19일 새벽, 부산 동구 수정동. 밤새 쏟아진 폭우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태풍 '베티'가 몰고 온 비는 하루에 400mm를 넘었습니다. 구봉산 기슭의 판잣집들은 물에 잠겼습니다. "이제 그만 그쳤으면..." 주민들은 불안한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새벽 4시경, "우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산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산사태였습니다. 수만 톤의 흙과 바위가 판잣촌을 덮쳤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다. 잠들어 있던 사람들은 집채 무너지는 소리에 깨어났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228명이 목숨을 잃었고, 235명이 다쳤습니다. 1970년대 최악의 자연재해였습니다.
왜 위험한 산기슭에 사람들이 살았나
1960~70년대, 부산은 급격히 팽창했습니다. 6·25 전쟁 때 피난민이 몰려들었고, 이후에도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계속 유입되었습니다. 집이 부족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산기슭에 판잣집을 지었습니다. 구봉산, 복병산, 금정산. 부산의 산들은 판잣촌으로 뒤덮였습니다. 무허가였습니다. 상하수도도 없었고,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살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유일한 보금자리였습니다.
위험했습니다. 경사가 급한 곳에 집을 지었습니다. 비가 오면 땅이 무르고, 집이 흔들렸습니다. 산사태 위험이 컸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기라도 살아야 하니까." 가난은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알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곳에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하지만 대책은 없었습니다. 철거하면 갈 곳이 없고, 공공주택을 지을 예산도 없었습니다. 그냥 방치했습니다. "설마 큰일이야 나겠어."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태풍 베티가 몰고 온 재앙
1972년 8월, 태풍 베티가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부산에는 특히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18일부터 19일 새벽까지 24시간 동안 400mm가 넘는 폭우였습니다. 하루 동안 한 달치 비가 쏟아진 것입니다.
구봉산 일대 판잣촌은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빗물이 넘쳤습니다. 집안으로 물이 들어왔습니다. 주민들은 밤새 물을 퍼냈습니다. "제발 그쳤으면..." 하지만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새벽 4시, 산이 견디지 못했습니다. 물을 머금은 흙이 무거워져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콰르르르" 엄청난 소리와 함께 산사태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만 톤의 흙과 바위, 나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판잣집들은 종이처럼 찢어졌습니다. 한 채, 두 채가 아니라 수십 채가 한꺼번에 무너졌습니다. 잠들어 있던 사람들은 집 속에 깔렸습니다. "살려주세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흙더미에 묻혔습니다.
산사태는 10분 넘게 계속되었습니다. 첫 번째 붕괴가 끝나면 두 번째가 이어졌습니다. 위쪽 집들이 무너지면서 아래쪽까지 연쇄적으로 휩쓸렸습니다. 순식간에 산기슭 전체가 흙더미로 변했습니다.
구조 작업, 그리고 절망
새벽이 밝아오자 참혹한 광경이 드러났습니다. 판잣촌이 있던 자리는 흙더미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무너진 집들의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습니다. "여기 사람 있어요!" 살아남은 주민들이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맨손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두꺼운 흙 속에 사람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중장비가 필요했지만, 산기슭까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길이 좁고 험했기 때문입니다.
군대와 경찰이 투입되었습니다. 삽으로 흙을 파냈습니다. 하나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묻혀 있기도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껴안은 채 숨진 모습도 있었습니다.
생존자도 발견되었습니다. 집 구조물 틈에 끼어 살아남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살았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시신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 가능성은 줄어들었습니다.
사흘간의 수색 작업 끝에 최종 집계가 나왔습니다. 사망 228명, 실종 28명, 부상 235명. 무너진 집은 315채. 1,500여 명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었습니다. 1970년대 최악의 재난이었습니다.
가난이 만든 참사
구봉산 산사태는 자연재해였지만, 동시에 인재였습니다. 태풍은 자연현상이지만, 위험한 곳에 사람들이 살게 만든 것은 사회 구조였습니다.
산기슭은 원래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습니다. 경사가 급하고, 지반이 약하고, 산사태 위험이 컸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평지의 집은 비쌌습니다. 월세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정부의 책임도 컸습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방치했습니다. 철거하지도 않았고, 이주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안전 점검도 없었고, 경보 시스템도 없었습니다. 재난 관리는 사실상 부재했습니다.
개발도 무분별했습니다. 산을 깎아 집을 짓고, 나무를 베어내고, 계곡을 메웠습니다. 산의 보수력(물을 머금는 힘)이 약해졌습니다.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흙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구봉산 산사태 이후, 정부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1973년, 급경사지 관리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위험한 산기슭을 조사하고, 보강 공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무허가 건물에 대한 단속도 강화되었습니다.
전국의 산사태 위험지역을 조사했습니다. 경사도, 토양, 강수량 등을 분석했습니다. 위험 등급을 매기고, 고위험 지역은 접근을 제한했습니다. 옹벽과 배수로를 설치해 산사태를 예방하려 했습니다.
판잣촌 철거도 시작되었습니다. 부산뿐만 아니라 서울, 대구 등 전국의 산기슭 판잣촌을 정리했습니다. 주민들을 공영 주택으로 이주시켰습니다. 산기슭은 나무를 심어 녹화했습니다.
하지만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공영 주택은 부족했고, 민간 주택은 비쌌습니다. 철거된 판잣촌 주민들 중 일부는 또 다른 산기슭으로 이동했습니다. 문제의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구봉산 산사태 이후 5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부산 도심의 산기슭에는 판잣촌이 없습니다. 대신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고층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주거 환경은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위험이 생겼습니다. 무분별한 산지 개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로를 내고, 건물을 짓고, 산을 깎아냅니다. 산의 보수력은 약해지고, 산사태 위험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로 16명이 숨졌습니다. 2020년에도 전국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위험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예방 시스템은 있습니다. 산사태 예보, 긴급 문자, 대피 시설. 1970년대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개발 압력은 여전히 강합니다. 경제 논리가 안전을 앞서갑니다. 구봉산의 교훈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가난과 개발, 그리고 안전
구봉산 산사태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위험한 곳에 사는가. 왜 그들은 거기에 살 수밖에 없는가. 개발과 안전, 무엇이 우선인가.
1972년 구봉산 기슭에 살던 사람들은 가난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거기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태풍이 왔을 때, 가장 먼저 희생당한 것은 그들이었습니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됩니다. 부자는 안전한 곳에 살지만, 가난한 사람은 위험한 곳에 삽니다. 재난이 터지면 가장 먼저 죽는 것도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구봉산 산사태는 50년 전 일이지만,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안전은 모든 사람의 권리입니다. 가난하다고, 집이 없다고, 선택권이 없다고 위험에 방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을 안전하게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다음 화 예고: 성수대교 붕괴 - 출근길을 삼킨 부실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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