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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84화지역 갈등과 혐오 본문

역사 & 현대 사회/대한민국 근현대사

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84화지역 갈등과 혐오

raon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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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도 위에 보이지 않는 벽들이 지역을 나누고

1971년 대선은 어떻게 지역주의를 만들었나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었다. 박정희는 경상도 출신이었다. 김대중은 전라도 출신이었다. 선거 결과는 박정희 승리였다. 하지만 지역별 득표 차이가 뚜렷했다.

경상도에서는 박정희가 압도적으로 이겼다. 전라도에서는 김대중이 압승했다. 지역별 득표율 격차가 60%를 넘었다. 출신 지역이 투표 성향을 결정했다. 지역주의 정치가 시작됐다.

이후 선거 때마다 반복됐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갈렸다. 후보의 정책보다 출신 지역이 중요했다. 정치인들은 이를 활용했다. 지역 감정을 자극했다. 표를 얻기 위해서였다.


왜 호남 차별이 고착됐나

1980년대 전두환 정권. 호남 출신은 주요 보직에서 배제됐다. 장관이 없었다. 청와대 비서실에도 없었다. 군부와 정부 요직이 TK와 PK 출신으로 채워졌다.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이었다.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대기업 임원에 호남 출신이 드물었다. 승진에서 밀렸다. 같은 능력이면 영남 출신을 뽑았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작동했다.

호남 사람들은 억울했다. 능력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출신 지역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 피해의식이 쌓였다. 한 표라도 더 주겠다는 심정으로 야당을 찍었다. 전라도는 야당의 텃밭이 됐다.


3김 시대는 지역주의를 어떻게 심화시켰나

1987년 민주화 이후 3김 시대가 열렸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었다. 각자 지역 기반을 가졌다. 김영삼은 부산경남, 김대중은 호남, 김종필은 충청이었다.

대선 때마다 지역 대결 구도였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이 당선됐다. 경상도가 뭉쳤다.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이 이겼다. 호남과 충청이 연합했다. DJP 연합이었다.

지역주의는 더 공고해졌다. 정치인들이 지역 감정을 부추겼다. 우리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 지역 발전을 약속했다. 표를 얻었다. 하지만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역분화

인터넷은 지역 혐오를 어떻게 확산시켰na

2000년대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됐다.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같은 사이트가 생겼다. 익명성 뒤에서 혐오 표현이 쏟아졌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말이 유행했다.

전라도를 홍어라고 불렀다. 경상도를 된장이라고 했다. 충청도를 배신자라고 했다. 욕설이 섞였다. 조롱했다. 혐오가 일상이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혐오를 증폭시켰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였다. 극단적 표현을 쓰는 게 용감해 보였다. 추천을 받았다. 혐오가 강화됐다.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2002년 월드컵은 왜 예외였na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이 열렸다. 온 국민이 거리로 나왔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었다. 대~한민국을 외쳤다. 지역이 사라졌다.

서울 광화문, 부산 광복동, 광주 금남로, 대구 동성로. 모든 도시에서 응원이 터졌다.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이 어깨동무를 했다. 함께 울고 웃었다. 한 달간 지역주의가 없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자 다시 돌아왔다. 그해 12월 대선이 있었다. 노무현과 이회창이 맞붙었다. 다시 지역별로 갈렸다. 호남은 노무현을, 영남은 이회창을 찍었다. 월드컵의 감동은 사라졌다.


청년 세대도 지역주의에서 자유로운가

2010년대 청년들은 달랐다. 지역주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출신 지역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게 이상했다. 서울에서 함께 자랐다. 같은 학교를 다녔다. 지역이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취업 시장에서 지역 학벌이 작동했다. SKY를 나와야 대기업에 갔다. 지방대는 서류에서 탈락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였다. 새로운 형태의 지역 차별이었다.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지역 혐오가 남아 있었다. 일베에서 호남 혐오가 계속됐다. 5.18을 폭동이라고 했다. 광주를 조롱했다. 젊은 세대 일부가 동조했다. 지역 혐오가 세대를 넘어 전승됐다.


지금도 지역주의는 유효한가

2024년 총선 결과를 보면 지역주의가 여전하다. 대구경북은 보수 정당이 이긴다. 광주전남은 진보 정당이 이긴다. 50년 넘게 반복된 패턴이다.

하지만 균열이 생기고 있다. 청년층은 이념과 정책으로 투표한다. 부동산, 일자리, 공정성이 중요하다. 출신 지역은 덜 중요하다. 수도권 표가 승부를 가른다.

인구 이동도 영향을 미친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청년들이 떠난다. 지역 정체성이 약해진다. 서울에 사는 부산 사람, 광주 사람이 늘어난다. 지역주의가 서서히 약화되고 있다.


질문은 남는다

왜 지역 갈등이 50년 넘게 지속되나. 정치인들은 왜 지역 감정을 이용하나. 지역 혐오는 누구에게 이득인가. 청년 세대는 지역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나. 진정한 통합은 언제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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