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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2화] 4·19 혁명"학생들이 독재를 무너뜨린 날" 본문

1960년 4월 19일, 서울 도심. 대학생과 고등학생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 물러라!"함성이 도시를 뒤흔들었습니다. 경찰이 총을 쏘았습니다. 학생들이 쓰러졌습니다. 피가 아스팔트를 적셨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독재 타도!" 계속 외쳤습니다
4·19 혁명.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12년 독재를 무너뜨린 민주 혁명이었습니다. 186명이 목숨을 잃었고, 6천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학생들이 독재자를 무릎 꿇렸습니다.
3·15 부정선거, 민심이 폭발하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네 번째 임기를 노렸습니다. 하지만 민심은 떠나 있었습니다. 12년 독재에 국민들은 지쳐 있었습니다. 경제는 어렵고, 부패는 만연했고, 자유는 억압받았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불안했습니다. "정당한 선거를 하면 질 수도 있다." 그래서 부정선거를 기획했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부정선거였습니다. 사전 투표, 대리 투표, 개표 조작. 온갖 수법이 동원되었습니다.
마산에서는 노골적이었습니다. 3인조, 9인조가 조직적으로 투표를 했습니다. 투표함을 바꿔치기했습니다. 야당 참관인을 쫓아냈습니다. "이건 선거가 아니라 사기극이다!" 시민들이 분노했습니다.
3월 15일 저녁, 마산에서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경찰이 발포했습니다. 8명이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정권은 "공산당 폭도의 소행"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한 고등학생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17세)이었습니다. 3·15 시위에 참가했다가 실종된 학생이었습니다. 시신의 상태는 참혹했습니다.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혀 있었습니다.
"경찰이 최루탄을 쏴서 죽였다!" 마산 시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더 격렬했습니다. 경찰서를 습격했고, 관공서에 불을 질렀습니다. 경찰은 또다시 발포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김주열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최루탄이 박힌 얼굴.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게 나라냐?" 분노가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들끓었습니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4월 19일, 학생들이 거리로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 명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국회의사당 앞까지 평화롭게 행진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정치 깡패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수십 명이 피를 흘렸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을 때리다니!" 충격이 더 컸습니다.
4월 19일 아침, 서울의 모든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경기고, 중동고. 학교마다 학생들이 대열을 지어 도심으로 향했습니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 하야하라!"
오전 10시경, 수만 명의 학생들이 광화문과 시청 앞을 가득 메웠습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습니다. 경찰은 저지했지만, 학생들은 밀고 나갔습니다. 최루탄이 터지고, 곤봉이 휘둘러졌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정오를 넘어서자, 경찰이 실탄을 쐈습니다. "탕탕탕!" 총소리가 도심을 울렸습니다. 학생들이 쓰러졌습니다.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뒤에 있던 학생들은 계속 전진했습니다.
시민들이 합류하다
오후가 되자 시민들도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넥타이 부대, 주부들, 상인들. "학생들만 죽게 할 수 없다!" 수십만 명이 거리를 메웠습니다. 이제 학생 시위가 아니라 민중 봉기였습니다.
경찰은 계속 발포했습니다. 하지만 시위대는 더 격렬해졌습니다. 일부는 경찰서를 습격했습니다. 반공회관을 불태웠습니다. 이승만의 독재를 상징하는 시설들이 공격받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군대가 투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은 학생들을 쏘지 않았습니다. "같은 국민을 어떻게 쏘나." 일부 군인은 학생 편에 섰습니다. 군대마저 돌아서자 이승만 정권은 끝이 보였습니다.
4월 19일 하루 동안 11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이었습니다. 열여덟, 열아홉 살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총을 맞고도 "독재 타도"를 외쳤습니다.
4월 26일, 독재자의 하야
4월 20일 이후에도 시위는 계속되었습니다.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모든 도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4월 25일, 대학 교수들이 시위에 나섰습니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이승만은 물러가라!" 교수들의 참여는 결정타였습니다. 지식인들까지 등을 돌린 것입니다.
4월 26일 오전, 이승만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습니다." 하야 성명이었습니다. 12년 독재가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거리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환호했습니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5월 29일,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쓸쓸한 퇴장이었습니다. 한때 독립 운동가였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그는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4·19가 남긴 것
4·19 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국민이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역사를 바꿨다는 것이 의미 깊었습니다.
혁명 후 민주주의가 꽃피는 듯했습니다. 언론이 자유로워졌고, 정당이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년 후인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4·19의 성과는 다시 짓밟혔습니다.
하지만 4·19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79년 부마 항쟁,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 독재에 맞서 싸운 모든 민주화 운동의 뿌리가 4·19였습니다. "학생들이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4·19의 기억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4·19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가.
1960년 4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총탄이 날아오는데도 "독재 타도"를 외쳤습니다. 18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것입니다. 4·19의 학생들, 그리고 이후 민주화를 위해 싸운 모든 이들의 피 위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그 자유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불의를 보면 외쳐야 합니다. 독재가 다시 고개를 들면 막아야 합니다. 4·19 정신을 기억하는 것은, 그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 화 예고: 5·16 군사정변 - 총칼로 권력을 잡은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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