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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99화 무엇이 달라졌는가 — 100개의 사건이 남긴 변화의 흔적들 본문

기록은 왜 필요했나
어느 나라든 역사를 정리하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자랑스러운 것만 남기거나, 불편한 것까지 함께 남기거나. 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시리즈는 후자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산업재해와 압사 사고, 국가 폭력과 언론 통제, 금융 위기와 세대 갈등, 환경 파괴와 먹거리 안전까지 불편하고 아픈 기록들을 98화에 걸쳐 쌓아왔습니다. 기록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닙니다. 무엇이 반복되었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를 보기 위한 과정입니다. 99화는 그 질문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자리입니다.
시민 의식은 어떻게 성장했나
1980년대 광주에서 총구 앞에 섰던 시민들과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 사이에는 36년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시민들이 권력에 맞서는 방식은 달라졌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법원에 청원하고,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소셜미디어에 기록을 남기고, 선거일에 줄을 섰습니다. 저항의 문법이 다양해진 것은 민주주의가 제도로 정착했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1995년에 시민들은 분노했지만 책임을 물을 경로가 좁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알려진 2011년에는 피해자들이 직접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기업 대표를 법정에 세웠습니다. 느리지만 방향은 있었습니다.
법과 제도는 무엇이 바뀌었나
100개의 사건·사고가 남긴 가장 구체적인 흔적은 법과 제도의 변화였습니다.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건설 안전 기준이 강화되었습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이후 지하철 안전 설비 기준이 전면 개편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법이 정비되고 국가안전처가 신설되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다중 밀집 행사 안전 관리 의무가 법제화되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생활화학제품 사전 심사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미투 운동 이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조항이 강화되었습니다. 각각의 사건이 없었다면 이 법들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가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법은 사건 이후에 왔다. 사건 이전에 법이 있었다면 피해는 달랐을 것이다.

무엇이 반복되었나
달라진 것이 있었지만 반복된 것도 있었습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수습과 애도가 이어지고, 진상 조사와 제도 개편이 약속되고, 시간이 지나면 유사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는 패턴이었습니다.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이듬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이후 안전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했지만 2022년 이태원에서 159명이 압사했습니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이 사건마다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불감증은 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안전에 투자하는 것보다 사고 이후 수습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드는 구조가 반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권력은 어떻게 달라졌고 어떻게 달라지지 않았나
국회가 대통령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2004년, 2017년, 2024년 세 차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기각하면서 직무에 복귀했습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과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인용하면서 파면되었습니다. 헌법이 규정한 권력 견제 장치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극단적 수단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치러야 했던 비용은 매번 컸습니다.
언론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못했나
100개의 사건·사고 대부분에서 언론의 역할은 중요했습니다. 형제복지원의 실태를 처음 보도한 것도 기자였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초기에 추적한 것도 취재팀이었습니다. 미투 폭로를 이끌어낸 것도 방송 카메라 앞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언론은 권력의 눈치를 보았고, 받아쓰기 보도를 했으며, 세월호 초기 보도처럼 오보를 냈습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한 역사와 권력에 복속한 역사가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길었는가는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피해자들은 무엇을 바꾸었나
100개의 사건·사고를 돌아볼 때 가장 뚜렷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변화를 이끈 것은 대부분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삼풍백화점 유가족들이 건설사 책임을 물었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삼성 반도체 공장의 실태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국회 청문회장에 앉았습니다. 미투 피해자들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수년간 진상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법도, 제도도, 기억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피해자가 변화의 동력이 되는 사회는 그 피해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100개의 사건·사고는 대한민국이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겪은 성장과 좌절, 파괴와 재건의 기록입니다. 절대 빈곤에서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로, 군사독재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능한 민주주의로, 산업재해를 당연하게 여기던 사회에서 안전을 권리로 요구하는 사회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동이 충분했는가, 공평하게 이루어졌는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었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변화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가 필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영역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질문은 남는다
피해가 제도를 만드는 구조를 바꿀 수 있는가. 반복되는 참사를 막지 못하는 사회는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 변화를 이끌어야 할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는가. 달라진 것들과 달라지지 않은 것들 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 100개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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