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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사건사고 11화: 북풍 공작 의혹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안보 카드" 본문

1992년 10월,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가 긴급 발표했습니다. "북한 간첩단을 적발했습니다.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이종찬 위원장 등이 북한의 지령을 받았습니다."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TV는 연일 간첩단 보도로 도배되었습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교묘했습니다. 야당 김대중 후보가 선거에서 앞서나가던 바로 그 시점이었습니다. "DJ는 빨갱이와 가깝다"는 의혹이 퍼졌고, 김영삼 후보가 역전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 밝혀진 진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간첩단은 조작이었습니다.
북풍 공작. 선거 때마다 안보 위기를 만들어 정권에 유리하게 여론을 조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냉전이 끝나고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북한 카드"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1992년 대선, 이종찬 간첩단 조작
1992년은 역사적인 해였습니다. 32년 만에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대통령이 되는 선거였습니다. 민자당 김영삼과 민주당 김대중의 대결. 초반에는 김대중이 우세했습니다. "이번에는 DJ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10월 12일, 안기부가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이종찬 위원장이 북한 간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으로부터 200만 달러를 받아 대선 자금으로 쓰려 했다"는 혐의였습니다. 당시 김대중 캠프의 핵심 인사였기에 충격은 더 컸습니다.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했습니다. "DJ 주변에 간첩이 있다", "빨갱이들이 선거를 조종하려 한다". 보수 유권자들은 불안해했습니다. "DJ가 대통령 되면 나라가 위험하다." 여론이 급변했습니다. 김영삼이 역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2월 18일 선거 결과, 김영삼 42.0%, 김대중 33.8%. 김영삼이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종찬 사건은 조작이었습니다. 안기부가 거짓 증거를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1998년, 법원은 이종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6년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1997년 대선, 북한 잠수함과 금융위기
1997년 대선은 또 다른 드라마였습니다. 이번에도 김대중이 후보로 나섰습니다. 세 번째 도전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맞붙었습니다. 초반에는 이회창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9월, 북한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에 침투했습니다. 무장 공비들이 상륙해 군인과 민간인을 살해했습니다. 50일간 추격전 끝에 사살되었습니다. 전국이 안보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DJ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나?" 여론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상 밖의 변수가 터졌습니다. IMF 외환위기였습니다. 11월, 한국 경제가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국민들은 더 큰 공포를 느꼈습니다. "경제가 먼저다."
12월 18일, 김대중이 40.3%를 얻어 당선되었습니다. 이회창은 38.7%였습니다. 북풍보다 경제 위기가 더 큰 변수였던 것입니다. 50년 만에 야당 후보가, 호남 출신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북풍은 왜 효과가 있었나
북풍 공작이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이 든 유권자들에게 "빨갱이" 공포는 강력했습니다. 6·25를 겪은 세대, 반공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에게 북한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북한과 가깝다"는 의혹만 씌워도 후보는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김대중은 평생 이 꼬리표와 싸워야 했습니다. "용공", "빨갱이", "북한과 내통". 근거 없는 의혹이었지만, 한 번 퍼지면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정보기관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타이밍 좋게" 간첩이 잡혔고, 안보 위기가 터졌습니다. 우연일까요? 국민들은 의심했습니다. "정권이 선거를 위해 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닌가?"
2000년대 들어서도 북풍은 계속되었습니다. 2002년 대선 직전 제2연평해전이 터졌습니다. 2004년 총선 전에는 탄핵 정국과 함께 안보 이슈가 불거졌습니다. 2007년 대선 때는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습니다.

NLL 발언 녹취록 조작 의혹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국정원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측에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수 진영은 들끓었습니다. "노무현이 나라를 팔아넘겼다!" 선거를 코앞에 둔 민주당 정동영 후보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결국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습니다.
하지만 2013년,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대화록이 편집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검찰은 당시 국정원 직원들을 기소했습니다.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대화록을 조작했다"는 혐의였습니다. 또 한 번의 북풍 공작이었습니다.
안보는 정치 도구가 아니다
북풍 공작의 가장 큰 문제는 안보를 정치 도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안보는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정권이 선거를 위해 안보를 이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첫째, 진짜 안보 위기가 왔을 때 국민들이 믿지 않습니다. "또 선거용 쇼 아닌가?"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반복하면,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둘째, 남북 관계가 정치에 휘둘립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이 180도 달라집니다. 보수 정권은 강경책을, 진보 정권은 유화책을 폅니다. 일관성이 없으니 남북 관계도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셋째, 국민들이 분열됩니다. 안보 이슈는 감정적입니다. "빨갱이냐, 애국자냐"로 갈립니다.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해집니다. 상대방을 적으로 몰아갑니다. 사회가 둘로 쪼개집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변화도
다행히 변화의 조짐도 보입니다. 젊은 세대는 북풍에 덜 민감합니다. 6·25를 직접 겪지 않았고, 냉전 시대를 모릅니다. 북한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 또는 경쟁의 대상으로 봅니다.
2017년 대선에서는 북풍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 등 안보 이슈가 있었지만, 젊은 유권자들은 "촛불혁명"과 "적폐 청산"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압승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2022년 대선에서도 안보 이슈는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국과의 관계 등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북풍은 형태를 바꿔가며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해
북풍 공작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언제까지 안보를 정치 도구로 쓸 것인가. 언제까지 "빨갱이" 프레임에 휘둘릴 것인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안보가 정쟁의 도구가 되지 않습니다.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합니다.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국민들도 안보 이슈를 냉정하게 판단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북풍 공작이 폭로될 때마다 국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집니다.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을 막는 제도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북풍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날, 그날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날일 것입니다. 안보는 안보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북풍 공작이 남긴 교훈입니다.
다음 화 예고: IMF 외환위기 - 국가 부도 직전, 금 모으기 운동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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