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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보어 - 경계를 허무는 취향의 혁명 본문

⏰시사 & 라이프스타일/라이프 스타일

옴니보어 - 경계를 허무는 취향의 혁명

raon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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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게이머의 탄생

김부장은 회사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중 하나였다. 30년 넘게 한 우물만 파온 베테랑, 엄격한 원칙주의자, 그리고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전형적인 꼰대. 그런 김부장이 요즘 퇴근 후 하는 일은 '발로란트' 게임이다.
처음에는 아들이 "아빠도 게임 한번 해봐"라며 억지로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걸 왜 하냐"며 투덜거리던 김부장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재미있었다. 아니, 재미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완전히 빠져버렸다.
지금 김부장의 발로란트 랭크는 골드 3티어. 회사 20대 신입사원들보다 높다. 퇴근 후 집에 가면 게이밍 헤드셋을 쓰고 "이번 라운드 작전은 이거야"라며 음성채팅에 열중한다. 부인은 "60살 먹고 뭐하는 짓이냐"며 혀를 차지만, 김부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이가 뭐가 중요해? 재미있으면 되는 거지." 김부장의 새로운 인생 철학이다.

20대의 한지공예 열풍

한편 김부장의 조카 지민(23)이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또래 친구들이 게임과 유튜브에 빠져있을 때, 지민이는 한지공예에 푹 빠져 있다. 전통 한지로 꽃을 만들고, 노리개를 만들고, 심지어 등까지 만든다.
"할머니 취미 아니야?"라며 놀리는 친구들에게 지민이는 당당하게 답한다. "그래서? 할머니들만 할 수 있는 법이라도 있어?" 실제로 지민이가 만든 한지 작품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인기가 폭발했다.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한 전통 공예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다.
지민이의 한지공예 클래스는 항상 예약 대기가 있을 정도다. 수강생들도 다양하다. 20대 직장인부터 50대 주부까지.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을 정도다.

고등학생 바둑왕의 K-pop 사랑

바둑계의 차세대 희망 이준호(17)는 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는 고등학생이다. 하루 8시간씩 바둑 공부를 하는 그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의외의 음악들이 가득하다. BTS, 블랙핑크는 기본이고, 최신 아이돌 음악까지 다 들어있다.
"바둑 두는 애들은 클래식이나 들을 줄 알았는데"라는 주변의 시선에 준호는 시원하게 답한다. "바둑 두는데 꼭 클래식 들어야 하는 법 있어요? K-pop 들으면서 바둑 두면 더 창의적인 수가 나와요."
실제로 준호의 바둑 스타일은 기존의 틀을 벗어난 파격적인 면이 많다. 전통적인 정석보다는 자유로운 발상을 중시한다. 스승은 처음에 걱정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준호의 독특한 스타일을 인정한다.

할머니의 힙합 도전

7년 전 남편을 여읜 박순자 할머니(72)는 요즘 새로운 취미에 빠져 있다. 바로 힙합 댄스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우연히 본 힙합 댄스 클래스에 호기심으로 등록했다가, 완전히 매료되어버린 것이다.
"할머니가 무슨 힙합이냐"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순자 할머니는 꿋꿋이 연습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몸이 안 따라줘서 힘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더니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동작을 선보인다.
"젊은 애들만 힙합 하라는 법 어디 있어요? 나이 먹어도 몸 쓰고 음악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건 똑같아요." 할머니의 당당한 선언이다.
할머니의 힙합 댄스 영상이 손녀의 틱톡에 올라가면서 화제가 되었다. "할머니 힙합 쌓았다"는 댓글들과 함께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제 순자 할머니는 동네 유명인이 되었다.

옴니보어 현상의 배경

이런 현상을 '옴니보어(Omnivore)'라고 부른다. 원래는 잡식동물을 뜻하는 단어지만, 2025년에는 나이, 성별, 세대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취향을 자유롭게 소비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과거에는 "나이에 걸맞게",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사회적 기준이 강했다. 60대는 바둑이나 등산, 20대는 게임이나 클럽, 이런 식으로 연령별로 취향이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김부장이 게임을 하고, 지민이가 한지공예를 하고, 순자 할머니가 힙합을 추는 것. 이 모든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것이다.

디지털의 역할

옴니보어 현상이 확산되는 데는 디지털 기술의 역할이 크다. 유튜브만 켜도 모든 세대, 모든 장르의 콘텐츠가 한꺼번에 나온다. 알고리즘이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관심사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추천한다.
김부장이 게임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유튜브 덕분이었다. "발로란트 초보자 가이드"를 검색했더니 친절한 설명 영상들이 주루룩 나왔다.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민이의 한지공예도 마찬가지다.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콘텐츠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널리 알릴 수도 있었다.

경제적 파급효과

옴니보어 현상은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기존에는 타겟이 명확했던 시장들이 확장되고 있다. 게임업계는 시니어 게이머층을 새로운 고객으로 발견했고, 전통공예업계는 젊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민이가 다니는 한지공예 공방 사장은 "요즘 20-30대 고객이 절반 이상"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50대 이상 분들만 오셨는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젊은 분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배우시고, SNS로 홍보까지 해주시니까 매출이 크게 늘었어요."
게임 회사들도 시니어층을 겨냥한 마케팅을 늘리고 있다. "게임은 젊은이들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이다.

세대 갈등의 해소

옴니보어 현상은 의외의 효과도 가져왔다. 세대 간 소통이 늘어난 것이다. 김부장은 요즘 신입사원들과 게임 얘기로 소통한다. "부장님, 어제 랭크게임 어떻게 됐어요?"라는 질문에 "아, 골드 2에서 떨어졌어"라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지민이와 할머니도 한지공예를 통해 더 가까워졌다. 할머니가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만들었는데"라며 전통 기법을 알려주고, 지민이는 "이렇게 하면 더 예쁠 것 같아요"라며 현대적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세대 차이"라는 말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취향과 관심사가 나이보다 더 중요한 소통의 기준이 된 것이다.

고정관념과의 전쟁

물론 모든 사람이 옴니보어 현상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다", "남자가 그런 걸 왜 하냐", "여자애가 너무 거칠다" 같은 시선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옴니보어들은 이런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김부장은 "나이 들어서 게임 하면 안 되나? 재미있는데?"라며 당당하다. 지민이도 "전통공예가 나이 많은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누가 정했어요?"라며 반박한다.

다양성이 만든 새로운 문화

옴니보어 현상으로 새로운 문화들이 탄생하고 있다. 시니어 게이머 클럽, 젊은이들의 전통공예 동호회, 할머니 힙합 댄스팀 등. 기존의 틀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조합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다양성은 사회 전체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관심사로 만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다.

진정한 개성의 시대

옴니보어는 단순히 취향의 다양화를 넘어선다. 진정한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의 상징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뭘까"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김부장의 게임, 지민이의 한지공예, 순자 할머니의 힙합. 모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 결과다.

미래의 옴니보어들

옴니보어 현상은 계속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존의 연령별 취향 구분은 더욱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80세 할아버지가 VR게임을 하고, 10대가 서예를 배우는 일이 당연해질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할 것인가.
2025년, 옴니보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더 다양하고, 더 자유롭고, 더 재미있다.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이라는 걸 그들이 증명하고 있다.
김부장은 오늘도 퇴근 후 게이밍 의자에 앉는다. "오늘은 플래티넘 달성할 수 있을까?" 60세의 게이머가 꿈꾸는 작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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